화장품 방문판매 9년의 베테랑인 도혜정(38ㆍ여) 아모레퍼시픽 강동특약점 지부장의 ‘전투(고객 방문)’ 준비는 무척 간단하다.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와 기초제품 샘플과 색조 제품 몇 개를 챙겨넣은 메이크업 박스를 챙기는 게 전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화장품 샘플을 잔뜩 싼 초록색 대형 가방을 끌고 다녔지만 2003년부터 PDA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도 지부장은 단순히 화장품 방문판매원이 아니다. 그는 고객 미용에 관한‘맞춤 카운셀러’라는 본연의 역할은 물론이고, 고객 건강과 웰빙 생활에 대한 조언자 역할도 수행한다.
400여명에 달하는 고객 관리에서부터 재고 확인에 이르는 과학적인 관리는 기본이다. 고객 관리의 원천은 PDA다. 고객이 구매를 결정하면 PDA로 주문을 넣고, 원하는 때와 장소에 맞춰 전달한다. PDA 안에는 고객의 제품 구매 이력과 결제 여부, 피부 타입이나 생일 등 고객에 관한 모든 정보가 수록돼 있다.
고객의 건강을 위해 간단한 건강 보조식품도 판매한다. 그는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단골이 언제 어떤 제품을 필요 할지 파악해 맞춤 카운셀링한다”며 “쓸데없이 모든 제품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재고 손실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情)’과 ‘첨단’을 접목한 방문판매가 화장품 시장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반세기 가까운 역사의 화장품 방문판매는 80년대 이후 전문판매점의 등장으로 위축되는 듯 했으나 최근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화장품 방판은 1조4,330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전체 화장품 시장(5조5,150억원)에서 26.0%를 차지했다. 화장품 방판시장은 2002년 이후 해마다 2%포인트씩 시장 비중을 넓혀가고 있다. 업계 1위인 ‘방판의 절대 강자’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64년 시작한 방판 사업은 현재 300만명 고객을 확보한 최대 판매망이다.
3만2,000명의 ‘아모레 카운셀러’가 이 회사 화장품 매출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다. 2002년 뒤늦게 화장품 방판에 뛰어든 LG생활건강은 매년 약 100%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미국계 방판 화장품 브랜드 메리케이까지 국내에 진출해 있다.
화장품 방판의 저력은 디지털과 전문지식으로 무장하며 변신에 성공한 ‘방판 아줌마 군단’에서 나온다. 초록색 가방을 메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화장품 아줌마’에서 이제 세련된 커리어우먼으로 180도 이미지 변화에서 성공했다.
명칭부터 ‘뷰티 컨설턴트’를 비롯해 ‘아모레 카운셀러’(아모레퍼시픽), ‘오휘 컨설턴트’(LG생활건강)로 바꾸며 전문가 이미지가 부각됐다. 실제로 마사지 등 피부관리도 전문자격증을 따기에 충분한 실력을 갖출 정도로 교육을 받은 뒤 현장에 투입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고객 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경우 방문판매원 85%에 PDA를 지급해 실시간으로 판매현황과 제품 주문, 재고 확인이 이뤄진다.
방문판매원의 인적 자원도 양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풍부해졌다. LG생활건강 방문판매사원의 평균적 모습은 30대 초ㆍ중반의 고졸 주부이고, 방판 역사가 훨씬 긴 아모레퍼시픽도 30대가 40%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 층이 늘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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