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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김승옥ㆍ무진기행…작가와 함께 찾아가는 무진기행

입력
2007.05.1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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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지음지식더미 발행ㆍ208쪽ㆍ9,000원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나는 ‘무진 10㎞’라는 이정표를 보았다.” 소설은 그렇게 길 떠났다. 드디어 종점에 도착했음을 소설은 이렇게 알린다. “선명한 검은 글씨로 ‘당신은 무진읍을 떠나고 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무진(霧津). 미몽 같기도 하고 절망 같기도 한 안개의 땅을 43년 만에 다시 찾는다. 김승옥(66)씨가 대학 4학년인 1964년 사상계 10월 호에 발표, “감수성의 혁명”이라는 격찬과 함께 문학사의 한 장을 열었던 소설이 이태동(68) 서강대 명예교수와의 진지한 대담과 함께 거듭났다.

소설 본문에서 붉은 글씨로 인쇄된 대목이 집중 토론될 부분이다. “일제의 폭압에서 벗어나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또다시 남북의 분단 아래 6ㆍ25 전쟁을 겪고 1961년 군사 정변의 혼란한 비극적 역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무진 10㎞’라는 이정표에 함축된 의미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가상의 공간, 무진이란 아련한 향수이면서 동시에 어둡고 무기력한 정서를 상징한다는 것.

대담을 접기 전, 작가는 이 소설의 독법을 제시한다. “무턱대고 경쟁을 추구하는 서울에서의 삶을 구가하기보다는 한 번쯤 무진과 서울을 왕복하면서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경험하는 자아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에서 추구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어요. 완벽한 삶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말미의 부끄러움이란 “자신의 현재를 합리화시키려는 감정 조작”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책은 2월 15일부터 3월 10일에 걸쳐 진행된 일련의 대담을 옮긴 것이다. 1999년 작가가 세종대 출강 당시, 사제의 연을 맺은 국문학 박사 김선주씨가 정리한 결과다. 작가는 그러나 2003년 2월 뇌경색 후유증으로 언어 장애를 겪고 있어, 요즘도 1주일에 1회 꼴로 언어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군데 군데 날림 글씨로 쓴 필담 기록도 함께 게재돼 있는 이 책은 언어의 벽에 갇힌 작가가 여전히 치밀한 정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해 준다.

이 데뷔작 이후 다음 해 <서울, 1964년 겨울> , 1977년 이상문학상 첫 회 수상작 <서울의 달빛 0장> 등으로 감성의 검을 휘두르던 작가는 그 무렵 시작한 영화 작업, 1980년 절필 선언 후 종교 귀의 등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해 왔다.

책에는 작가의 체온 또한 담겨져 있다. 말미의 자전적 에세이에서는 어린 시절 둘째 가라면 서러웠을 개구쟁이의 추억담 등이 기념 사진, 전문가급 실력의 카툰ㆍ스케치 등과 함께 실려 나온다. 인터뷰 당시 정황을 전해 주는 필담 등도 수록돼 있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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