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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김숨 두번째 소설집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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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김숨 두번째 소설집 '침대'

입력
2007.05.18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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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발행ㆍ312쪽ㆍ1만원김숨, 기묘한 상상으로 현대인의 불안 토해내다

“현대사회의 병리학적 야만성에 의해 오늘도 죽임을 당하고 있는 식물성의 비명”(소설가 박범신)이라는, 김숨(33)에 대한 작품론은 두 번째 소설집 <침대> 에 있어서도 대체로 유효하다.

첫 창작집 <투견>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이번 책은 특유의 잔혹한 상상력과 섬뜩한 묘사가 형형하다. 장편 <백치들> (2006)에서 엿보이던 미니멀리즘 지향이 더욱 뚜렷해져 작품마다 탄탄한 미장센을 제공하고 있다.

8편의 단편이 담긴 이번 작품집에서 작가는 노파를 주인공으로 자주 호출한다. 표제작과 <쌀과 소금> <손님들> 이 그러한데 앞의 두 편은 ‘여자의 일생’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표제작의 주인공은 35년간 철제 침대 곁을 지키는 노파다. 어느날 ‘그들’-아마도 노파의 아들들인 듯한-은 그녀에게 침대를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

그것이 그녀에게 부여된 권리이자 의무라면서. 침대를 지킨 지 13년 후 그녀는 그들에게 버림받고, 20년 후엔 병자들의 위로가 되고, 35년 후 외로운 죽음을 맞는다. 와중에 그녀의 하릴없는 침대 지키기는 때론 신념이자 희생으로, 때론 집착이자 위선으로 불린다.

저항하지 않는 모성에 대한 외부의 폭력적 규정. 직접 빚은 종이꽃으로 장식한 침대에 누워 죽으면서 제 몸에 찬란한 꽃을 피울 때가 차라리 그녀의 ‘화양연화’다. 자매들에게 헌신하고자 죽음의 신탁마저 거스르는 <쌀과 소금> 속 노파 또한 여성 혹은 어머니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형상화한다.

<손님들> 에선 좀더 적극적인 사회비판 메시지가 읽힌다.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들을 장가보낸 노파가 35년째 살고 있는 집에 낯선 자들이 들이닥친다.

주택 철거단원으로부터 이 집을 지켜주겠다면서. 그들의 점거가 길어질수록 노파는 화가 나고, 이런 불편한 동거가 계속될 바엔 차라리 집이 철거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손님들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집이 한순간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96쪽) 평온한 일상은 ‘손님들’의 틈입으로 단박에 위기로 규정되고, 결국 노파는 제 집을 등지고 만다.

식물성 존재에 가해지는 사회구조적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은 퇴출되는 중년 사원의 비애를 그린 <박의 책상> , 가난의 상징인 낡은 트럭을 대물림하는 부자 이야기인 <트럭> 에서도 뚜렷하다.

<409호의 유방>은 실험적 형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파트 관리인의 방문을 기다리는 부부의 괴기한 일상을 다루면서 작가가 노출하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다.

간결하고 직유가 풍부한 문장으로 빚어진 그로테스크한 풍경 속에서 독자는 정보의 편린들을 모아 풍부한 서사를 재구성해보는 지적 유희를 누릴 수 있다. 추리소설식 구성, 미니멀리즘적 서술 등 이 젊은 작가의 ‘열린 텍스트’ 실험이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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