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단재 신채호는 ‘어떤 주의가 조선에 들어오면 조선의 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의 조선이 된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식민지 시절 탄식처럼 내뱉었던 단재의 이 말은,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든 지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 주위엔 수많은 주의들이, 주의에 주의를 낳으며 끝없이 번성하고 있다. 반공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맑스주의, 교조주의, 개인주의 등등. 사실, 이런 주의들을 탄생시키고 번역하고 퍼뜨리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지식인 계층이다. 지식인들은, 혁명에 직접 참여하지 않더라도, 그 혁명에 ‘주의’라는 단어를 붙임으로써, 자신 또한 당당한 혁명의 주역임을 만방에 과시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혁명에 참여했던 시민이나 노동자, 농민들보다 더 우위에 서게 된다. 우리 주위에 넘쳐나는 ‘주의들’의 비밀은 어쩌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5ㆍ18이 일어난 지 이십칠 년이 흘렀다.
그동안 우리 주위엔 수많은 5ㆍ18 ‘주의’들이 등장했다. 대부분 ‘5ㆍ18에 의한’ 것들이 아닌, ‘5ㆍ18을 위한’ 것들이었다. 무엇무엇을 ‘위한’다는 것들에게서는 어쩔 수 없이, 무엇무엇보다 ‘우위’에 있다는, 내려다봄의 시선이 느껴진다. 주의만 덩그러니 남은 것 같은, 5ㆍ18 아침이다.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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