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산의 행사장에 오늘의 행사 이름이 적혀 있다.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시험운행. 경의선의 재개통이 아니다. 흥분하거나 오버하지 말자 하고 생각하지만 설레임은 어쩔 수 없다. 그저 ‘시험’만 하고 말 것이면 뭣 때문에 시간과 돈을 들여 이 공사를 했겠는가.
또 아무리 ‘남북철도 연결구간’이라고 냉정한 표현을 쓰지만 엄연히 경의선의 가장 중요한 구간이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기념사도, 북측의 권호웅 내각책임참사의 축사도 민족 화합과 공동번영의 길을 여는 뜻 깊은 행사라는 데 의미를 두었다.
오늘의 철마는 증기 기관차가 아니다. 디젤 기관차다. 위로는 연기를 내뿜고 옆으로는 증기를 뱉어내면서 때론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는 증기 기관차가 강인하면서도 슬픔을 머금은, 어딘가 살아있는 느낌을 주지만 오늘 행사에는 오히려 디젤기관차가 더 잘 어울린다.
우리가 과거를 회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꿈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기야 56년 전에 나의 가족은 그 시커먼 철마의 지붕에 올라타고 월남을 했으므로 오늘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감회는 남다르다.
그러나 맑게 갠 봄날 북쪽에서 내려온 인사들과 마주 앉아 차창 밖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분단시대 최고의 긴장 지역을 바라보노라니 “아, 이 길이 다시 닫히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리고 곧 생각은 철길을 따라 평양, 신의주로 내닫는다.
너무 가까운 곳이다. 허무할 정도로. 이 생각 저 생각 길게 할 짬도 없이 열차는 벌써 개성 시내로 들어간다. 처음 북쪽 거리 풍경을 볼 때의 충격적 낯설음은 이제 많이 완화되었다.
워낙 영상매체를 통하여 자주 봐왔기 때문이리라. 또 한옥이라든가 일제시대 풍의 건물들이 더러 눈에 띄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북한 주민들의 일상 생활은 먼발치에서 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남쪽 일행을 환영해준 젊은 청년들과 자남산 여관에서 일하는 종업원들과는 눈길을 주고 받고 때로 웃음을 나누기도 한다.
여관에서는 순하고 담백한 맛의 점심 식사가 나온다. 건배를 하면서 백로주라는 30도짜리 소주를 마신다. 술맛이 좋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선죽교로 간다. 열 걸음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돌다리이다. 그 자체야 크게 볼 것이 없지만 그래도 군데군데 눈에 띄는 옛 자취들이 반갑다.
그 짧은 시간에 적응해서 그런지 아니면 약간의 술기운 때문인지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평온하다. 임진강과 군사분계선을 넘어도 올 때처럼 두근거리지 않는다.
하기는 같은 시냇물과 같은 논두렁, 같은 새들과 같은 풀, 같은 바람과 같은 햇빛 속을 오간 것이다. 먼 길도 아니고 다른 천지도 아니다. 갔다 와 보니 그렇다. 내 옆에 있던 강만길, 리영희 두 분의 대화가 들린다. “개성이 참 멀긴 멀다.” “그렇죠. 여기 오는 데 56년이 걸렸으니.”
경의선, 동해선을 통해서 철의 실크로드가 뚫릴 때까지는 또 얼마나 걸릴 것인지. 아마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러나 대수랴. 가는 방향은 이미 정해졌고 첫 걸음을 했으니 머지않아 여기에 정기 열차가 다니리라. 오가면 길은 생기는 법이니.
이건용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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