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발표한 ‘인문학 진흥 기본계획’은 얼마나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우리는 여러 모로 어려운 인문학 분야를 정부가 지원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돈만 퍼 준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누차 지적해왔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계획은 매년 평균 400억 원씩 2016년까지 4,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것이 골자로, 내실을 거둘 수 있는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학문 후속 세대가 지속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대학 교양 과정에 인문 분야 강좌를 최소한도로나마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이 문제는 중ㆍ장기 과제로 돌려지고 말았다. 인문 교육 과정을 다양화, 특성화한다고만 돼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안 보인다. 물론 학제 개편은 대학의 자율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정부가 일률적으로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비전도 없이 돈만 주어서는 의미가 없다.
또 한 가지, 일부 인문 분야의 경우 대학 교수 내지는 연구자 수가 상대적으로 과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인문학계에서도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려면 쓸 데 없이 비대해진 분야에 대해서는 당연히 시장 논리에 맡겨 구조조정이 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러한 기본 실태에 대한 치밀한 조사나 시정 방안 없이 막연히 인문학 일반을 지원하겠다니 서둘러 생색이나 내자는 것으로 비친다.
특히 1년에 200억원을 집중하는 대학 거점 연구소(단) 내지는 지역학 연구소 지원 사업의 경우, 6월에 사업 계획을 공고하고, 7월 말까지 신청을 받아 9월에 지원 대상을 발표한다니 그 비인문학적 발상이 놀랍기까지 하다. ‘세계적 수준의 인문학(지역학) 연구소’로 육성하겠다는 사업단이 어떻게 한 달여 만에 사업 계획을 만든단 말인가. 그러니 두뇌한국(BK) 21의 재판이라는 소리가 나온다.
작년 9월 인문대 학장들의 선언으로 시작된 인문학 지원 문제가 결국 이런 식으로 낙착될 것을 우려한 바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고 보니 다시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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