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하는 농담이다. 나폴레옹과 알프스, 그리고 그의 병사들 얘기다. 오스트리아 군을 격파하기 위해 알프스 산맥을 넘는 프랑스군. 고생 끝에 산 정상에 오르자 나폴레옹이 말했다는 것이다. “이 산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전혀 사실이 아니고, 역사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는 얘기다. 이런 진부한 조크를, 참여정부에 관여했던 친(親) 노무현 대통령 인사들의 최근 활동을 보면서 떠올렸다. 친노 인사들이 만든 참여정부평가포럼(참평)은 집권 5년간의 공과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 내리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8.15 남북정상회담 개최론이 점점 현실감을 띠면서 진지한 얘기가 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산 속의 프랑스 군병사가 된 것 같은 피로감을 준다.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겠다는 발상도 문제가 많다. 임기말 정권의 정상회담 추진도 전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피곤해지는 것은 그런 변칙 때문 만은 아니다. 5년 가까이 이리저리 끌려 다닌 기억이 되살아 나고, 그런 돌발상황이 다시 한번 일어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참평’ 관계자들의 자평은 “냉철하게 해왔다” “균형 있는 외교” “소름 끼치도록 현명한 판단” 등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롤러코스터처럼 어지러운 5년이었다. 취임식 전부터 노무현 정부는 독창적인 외교 언어를 만들어냈고, 새 언어가 나올 때마다 파문이 일었다. 그런 말들이 지금 ‘참평’의 자기평가서에는 남아 있지 않다.
이른바 ‘동북아시리즈’는 수 많은 사례 가운데 일부에 불과하다. 취임 초엔 국정 지표인 ‘동북아중심국가’가 중국의 비공식 유감표시로 ‘동북아경제중심’으로 바뀌었다. 중국을 사전에 이해 시키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이 구상의 이념적 배경이 한중일 연대를 통한 미국과의 세력균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극(笑劇)이나 다름없다. 2005년 3월에는 다시 불쑥 공사졸업식에서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놓아 주변국을 긴장시켰다. 한미동맹을 버리고 19세기 영국처럼 고립정책을 추진하는 것인가, 그야말로 동북아가 시끄러웠다. 노 대통령은 그런 ‘균형자’가 아니라고 해명하다 이 말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취임 전 ‘자주적 발언’을 주로 하던 노 대통령은 첫 미국방문길에서 “한국전쟁 때 미국이 없었다면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도 몇 년 뒤 이 발언을 부끄러워 한다고 밝혔다. 그런 후회의 말이 “이 산도 아닌데, 저 산도 아니더군”이라는 뜻으로 들렸다.
참여정부의 정책에는 공적도 많다. 2차 핵 위기가 발발하고 제한 폭격설이 거론되던 때 닻을 올린 정권은 불가피하게 줄타기 노선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국민을 이리저리 불필요한 곳으로 끌고 다닌 것은 큰 흠결이다. 그것은 정권의 커다란 전략관이 처음부터 취약했고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때마다 국민이 수업료를 대신 치르느라 힘을 소모했다.
임기 말의 남북정상회담도, 만일 추진된다면, 소모적 행사의 전형이 될 것이다. 정상이 만나 어떤 합의를 이루더라도, 그 실천과 이행은 다음 정권의 몫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새 정권은 이 합의를 무시하든지, 이를 토대로 새로운 정상회담을 추진하든지 선택하게 된다. 어느 쪽이라고 해도 지금 논란을 무릅쓰고 굳이 회담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추진된 남북대화는 성공한 사례가 없다. 지금은 새로운 산을 오르기보다 평원을 향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몹시 벅찰 때다.
유승우 swy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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