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현조(35ㆍ골드윈코리아) 대원은 2005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낭가파르밧(8,125m) 루팔벽을 등정, 세상을 놀라게 한 한국 산악계의 신성이었다. 라인홀트 메스너가 초등한지 35년만의 쾌거 였다.
평소 그는 주변 산악인들로부터 ‘강철 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무슨 일이든 덤덤하게 받아넘기는 산꾼’이자 진한 동료애의 소유자라는 평을 받았다. 2001년 시샤팡마 남벽 등정 후 하산 길에 크레바스에 추락했으나 극적으로 빠져나온뒤 해발 7,850m 설벽에서 비바크를 하고도 체력이 떨어진 선배 대원을 구하기 위해 다시 100m를 거슬러 올라간 일화는 유명하다.
2005년 낭가파르밧에서는 두시간 남짓 비바크로 눈을 붙인 것 외에는 휴식 없이 48시간을 등반했는데도 베이스캠프에 내려와 이틀동안 해외 클라이머들과 파티를 벌이며 강철체력을 과시했다.
이 대원의 산악 인생은 전남대 산악부에서 시작했다. 주말이면 인근 무등산이나 월출산 바위에 매달려 지내고, 방학이면 설악산 지리산에서 살면서도 적십자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졸업 후 학사장교로 임관해 해병대 수색대 소대장을 맡으며 키운 리더십은 한국 산악계의 대들보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이 됐다.
많은 산악인들은 낭가파르밧 루팔벽 등정 축하연에서 “로체 남벽, 다울라기리 서벽, 마카루 서벽 등 거벽들이 곳곳에 솟아있는 히말라야가 있어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던 이 대원의 당찬 포부를 아직도 기억한다. 진지한 산사람이자 휴머니스트였던 고인의 죽음은 한동안 한국 산악계의 큰 슬픔이 될 것이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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