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린 한국언론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문화저널리즘’에 관한 한편의 흥미로운 발표가 있었다.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이기형 교수가 3월 22일부터 4월 4일 사이의 국내 4개 신문 문화면 보도에 대한 간략한 분석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자료를 보면 현재 중앙 일간지에서 문화 부문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문화관련 보도의 전체적인 경향성을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주말판의 경우 신간 안내와 서평이 많은 지면을 고정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현재 문화면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출판과 문학 관련기사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교육과 육아 관련기사이며, 이어서 방송연예 그리고 영화 관련기사 순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기사 면 수에서 문화면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20% 정도인데, 기자나 외부기고자의 문화관련 전문칼럼은 아직 소수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문화면의 기사들 중에서, 특정 문화이벤트에 대한 비교적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는 스트레이트성 기사 이외에 특정 문화현상이나 문화정책, 문화 트렌드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기사들은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문화면에서 광고면이 차지하는 비율도 지나치게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분석결과는 우리사회의 문화화 정도, 그리고 문화저널리즘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우리는 90년대 이후 입만 열면 소위 ‘문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떠들어 왔지만, 아직도 문화에 대한 인식은 사회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언론의 문화관련기사는 정치 경제 기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있을 뿐 아니라, 늘 해오던 방식대로 문학이나 공연 소개 중심의 상투적 기사 형태에 머물러 있어 전혀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독자들의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해주기는커녕 자사가 주최하는 영화상이나 뮤지컬 시상식에 대한 자화자찬 격 홍보성 기사를 후안무치하게 내보내는 언론사의 보도행태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대중문화계, 공연예술계를 중심으로 현재 부상하고 있는 각종 문화현상과 트렌드에 대한 심층적인 기획과 분석은 찾아보기 힘든데, 혹시 있더라도 그 기사들은 경제중심주의에 매몰된 단선적 사고를 드러내기 일쑤다. 이렇게 문화관련보도에서 독자인 우리들이 자주 접하게 되는 비전문성은 바로 우리사회의 문화저널리즘의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적 지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전문적인 문화저널리즘의 정착과 그에 따른 일간지 문화면의 혁신은 현재 정치와 경제 관련 뉴스에 매몰되다시피 한 한국의 언론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가능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연일 반복되는 엇비슷한 국내 정치관련기사에 독자들을 식상해 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선 후보들의 모습이라든지, 실체도 불분명한 소위 ‘범여권 후보’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 언론이 쏟아내는 추측성 보도들은 이제 지긋지긋할 정도다. 언제부턴가 부동산과 증시 관련기사들로만 넘쳐 나는 경제면 기사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기만 한 이 시대에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경제이슈들이 어찌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미디어가 앞장서서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 담론의 과잉상태를 벗어나려 시도할 때가 되었다. 문화의 시대에 걸맞은, 문화와 관련된 심층기획기사를 보고 싶다. 최소한 정치 경제 사회면에 버금가게 문화면을 균형적으로 배치하고, 기획한 신문을 보고 싶다.
말로만 문화산업, 창의한국을 떠들게 아니라 문화사회로 가는 길은 미디어가 앞장서야 한다는 인식 하에 문화저널리스트와 외부 문화기고가를 키우고, 문화칼럼을 고정 배치하고, 문화관련 심층취재를 기획하는 언론사를 보고 싶다.
경쟁적으로 출시되고 있는 중앙 일간지의 일요일판은 단순히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저널리즘의 구축과 문화담론의 활성화를 위한 장이 될 수도 있다. 문화, 예술과 책에 대한 전문적 비평 기사로 명성이 드높은 뉴욕타임즈 만큼은 아니더라도, 문화면 기사들만으로도 일독할 가치가 충분한 그런 신문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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