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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미술대전 '비리 복마전' 50여명 구속·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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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미술대전 '비리 복마전' 50여명 구속·입건

입력
2007.05.16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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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썩었다. 미술협회 차원의 자정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 공모전인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 비리를 수사한 경찰은 16일 협회의 총체적 비리를 설명하며 이례적으로 도덕성 문제를 거론했다.

금품 수수 사실이 드러나도 협회 간부들은 “예전부터 이뤄진 관행인데 뭐가 문제냐”고 오히려 경찰에게 따지는 등 윤리 의식이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끝까지 거짓말한 화가들도 있다”며 “그림은 화가의 혼(魂)이 담겨 있다는데 예술가가 이래도 되는 거냐”고 말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16일 제자 또는 후배들한테 돈을 받고 이들의 작품을 미술대전에 입상 시켜준 혐의(업무방해 등)로 한국미술협회 전 이사장 하모(54)씨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조모(60)씨 등 심사위원과 협회 간부, 청탁 작가 등 4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하씨는 협회 이사장이던 지난해 4월 제25회 미술대전 한국화 부문 심사를 앞두고 후배 이모씨한테 1,000만원을 받고 심사위원에게 압력을 넣어 이씨의 작품을 특선에 입상 시켜 주는 등 모두 4명의 작품을 부당하게 특선에 입상할 수 있도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짜고치는 고스톱’ 합숙하기도

미술협회 간부와 심사위원은 미술대전에 공모한 신인 작가들에게 돈을 받고 미리 수상작을 선정했다. 이들은 자신의 제자 또는 화풍(畵風)이 비슷한 작품을 우선 입상 시켜 주고 뇌물을 받았다. 협회 간부와 심사위원은 입상 시킬 작품 비율을 미리 정할 정도로 치밀했다. 1차 심사를 통과하는 입선작은 심사위원 쪽에서 60%, 협회에서 40%를 미리 선정했다. 2차 심사를 통과하는 특선작도 3대7로 조율이 돼 있었다.

미리 찍은 작품을 심사 과정에서 정확히 뽑아 내는 방법도 혀를 내두르게 했다. 지난해 4월 미술대전 문인화 부문 심사를 앞두고 협회 간부들은 심사위원 11명 중 8명을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모텔에 모아놓고 자신들이 돈을 받고 미리 점 찍은 출품작을 외우도록 했다.

출품작이 2,000점이 넘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사전에 결정된 작품을 까먹을 까봐 3,4일 동안 집에도 가지 않고 외웠다. 경찰 관계자는 “유명 작가의 작품이라도 이런 식이라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차 심사에서 선정된 입선작 391점과 2차 심사에서 뽑힌 특선작 113점은 대부분 이 같은 방식으로 미리 결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입상작의 97%는 뇌물 또는 사제지간에 따른 특혜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뇌물 금액도 정해져 있다. 입선은 300만~500만원, 특선은 1,500만~2,000만원, 최고 상인 대통령상을 받으려면 3,000만원을 내야 했다. 대통령상 상금 3,000만원 등도 당연히 상납했다.

●대신 그려주기도 성행

작가들의 도덕적 해이도 심각했다. 중견화가 S씨는 지난해 4월 출품을 준비 중이던 제자 3명에게 각각 350만원씩 받고 미술대전 공모작을 대신 그려줬다. 유모(65)씨는 2005년 11월 무명 작가 윤모씨에게 접근해 “출품작을 대필해 특선에 입상하게 해주겠다”며 1,500만원을 받고 한국화 등 2편을 그려 줬지만 윤씨 작품은 낙선했다.

윤씨는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유씨는 거절했다. 윤씨는 경찰 대질신문에서 유씨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자 화가 나 과음을 계속하는 바람에 최근 간경화로 숨졌다고 경찰은 전했다.

●협회 선거는 복마전

경찰은 미술협회 비리의 근본 원인으로 이사장 선거를 지적하고 있다. 1949년부터 정부가 운영해 온 미술대전은 89년 미술협회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선출직인 이사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2만4,000여 명의 회원에게 걷어 들인 연회비(1인당 2만5,000원~3만5,000원)와 정부가 매년 지원하는 1억~1억2,000만원의 문예진흥기금 등 자체 예산 10억원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현직 이사장 노모(57)씨는 지난해 선거에서 문서를 위조해 무자격자를 협회 회원으로 등록시켜 표를 모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사장 되려면 30억원은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막대한 선거 비용을 쏟아 붓다 보니 당선 되면 금품을 받아 챙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주로 문인화 부문을 수사해 온 경찰은 규모가 더 큰 한국화와 서양화 등 작품 전반에 대해 수사를 확대키로 했다.

강철원 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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