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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10> 아랑후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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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10> 아랑후에스

입력
2007.05.15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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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 비친 아랑후에스는 정원의 도시였다. 왕궁에서 나와 여왕의 거리(카예 델라 레이나)를 끼고 걷자니 왼편으로 하염없이 정원이 이어졌다. 그것은 아랑후에스가 대단히 인공적인 도시라는 뜻이었다.

모든 도시는 인공의 소산이지만, 아랑후에스는 사람의 손길로 자연마저 인공화한 도시였다. 그러니까 아랑후에스는 그저 아름다운 도시라기보다 예쁜 도시였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중세 이전부터 이 지역에 도시 비슷한 취락 형태가 존재하긴 했으나, 아랑후에스가 본때 있는 도시로 출발한 것은 16세기에 왕궁과 정원이 들어서면서부터이기 때문이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국왕과 왕족들이 쉬고 즐기러 오는 곳이었고, 그래서 이 도시의 자연은 인공적으로 아름다워야 했다. 다시 말해 그저 아름다운 것을 넘어 예뻐야 했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주에 속해 있다. 수도 마드리드를 스쳐 남으로 흐르는 하라마강이 아랑후에스에서 타호강에 합류한다.

정원이 끝날 기미가 안 보였으므로, 친구들과 나는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 거기서 출발하는 치키트렌을 타기로 했다. 관광객 티를 내기로 한 것이다. ‘치코’(꼬마, 작은)와 ‘트렌’(기차)을 합쳐서 만든 말일 치키트렌은 아랑후에스의 정원 대부분과 주택가 일부를 도는 꼬마기차다. 생김새는 놀이공원의 기차를 닮았으나, 철로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놀이공원의 기차보다도 더 자유분방하다.

우리는 그 자유분방한 기차를 타고 정원의 도시를 주마간산 격으로 훑었다. 숲속에는 가을이 한결 깊어져 있었다. 치키트렌이 아폴로의 샘(푸엔테 데 아폴로)에 이르렀을 때, 소풍 나온 듯한 초등학생 한 무리가 보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소풍을 떠올렸다. 다녀오고 나면 허전하기만 했던 그 소풍이 그 시절엔 왜 그리 기다려졌던지 모르겠다. 서울이나 그 둘레에도 이리 예쁜 정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어린 시절의 동구릉이나 서오릉은 문득 아름답긴 했으나 예쁘진 않았다. 아니 넉넉히 아름답지도 않았다. 내 발길이 닿은 조국의 풍경은 충분히 자연적이지 않았고, 그렇다고 충분히 인공적이지도 않았다.

“결혼식을 이 정원에서 올려야겠어.” 독신 친구 하나가 실없는 소리를 농했다. 그저, 이 정원의 예쁨에 대한 찬사였으리라. “언제 할 건데?” 늘 진지한 기혼 친구가 거기 대꾸해 주었다. “예순 살이 되면.” 그러고 나서 그 둘은 그 혼례에 초청할 하객의 이름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결정되지 않은 것은 예비 배우자뿐이었다.

다른 독신 친구가 <아랑후에스협주곡> 을 흥얼거렸다. 나도 따라 읊조렸다. 그라나다에서 아랑후에스로 차를 몰면서도 우리는 리플레이 상태로 이 곡을 계속 틀어놓았었다.

그것은 어린애 같은 짓이었으나, 아랑후에스라는 도시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례 같은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아랑후에스에 들르기로 결정한 것도, <알람브라궁전의 추억> 과 한 시디에 실린 <아랑후에스협주곡> 에 촉발돼서였다. 농부의 집(카사 델 라브라도르) 앞에서 치키트렌이 잠시 쉬었다. 운전기사는 우리에게 산책을 권유했다.

농부의 집에서 여왕의 거리 쪽으로 펼쳐진 왕자의 정원(하르딘 델 프린시페)을 걷자니 눈앞 풍경의 현실성이 흐릿해졌다. “꿈결일까?” <아랑후에스협주곡> 을 계속 흥얼거리는 친구에게 내가 장난스레 물었다.

“현실이야.” 그가 흥얼거림을 멈추고 단호하게 판결을 내렸다. 초목의 조락 속에서도 아랑후에스의 정원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예뻤다. <아랑후에스협주곡> 이 이 풍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 풍경이 그 음악 속에서 튀어나온 것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랑후에스협주곡> 은 피겨스케이터들이 배경음악으로 가장 선호하는 선율 가운데 하나다. 미국인 여성 피겨 스케이터 미셸 콴은 2003년 워싱턴 세계피겨스케이팅대회에서 일본인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川井郁子)의 연주에 맞춰 펼친 연기로 생애 다섯 번째 세계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마키무라 사토루라는 일본 작가가 그린 만화 <사랑의 아랑후에스> 도 얼음판 위에서 이 협주곡을 몸으로 재현하는 것이 소원인 여성 피겨스케이터 얘기를 그리고 있다.

<아랑후에스협주곡> 은 본디 클래식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호아킨 로드리고가 1939년 파리에서 썼고, 이듬해 11월9일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음악궁에서 초연됐다. 이 곡은 세 악장으로 이뤄져 있다.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에서 시작해 아다지오를 거쳐 알레그로 젠틸레로 끝난다. 그 가운데 사람들 귀에 가장 익숙한 것은 기타가 잉글리시호른(이나 다른 솔로 악기)과 버무려지는 제2악장 아다지오다. 기 본템펠리가 거기 가사를 붙여 샹송으로 유명해진 <내 사랑 아랑후에스(아랑후에스, 모나무르)> 덕도 있을 게고, 영화나 광고에 흔히 삽입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제2악장인 덕도 있을 게다.

B-마이너를 주조로 삼은 이 악장은 친구들과 내가 아랑후에스에서 걷고 있는 이 조락의 정원과도 꼭 어울린다. 신록의 정원이나 무성(茂盛)의 정원도 그것대로 맛은 있겠으나, 그것들은 아다지오의 정원이 아니다.

재즈의 전설로 불리는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에서 시작해 바이올리니스트 가와이 이쿠코, 클라리네티스트 장-크리스티앙 미셸, 재즈 키보디스트 칙 코리어, 기타리스트 버킷헤드 등 다양한 지역적 배경의 특급 연주자들이 갖가지 악기와 분위기로 <아랑후에스협주곡> 을 거듭 해석했다. 그 덕분에 <아랑후에스협주곡> 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선율 가운데 하나가 됐다.

파리에서 쓰긴 했지만, 작곡자가 <아랑훼스협주곡> 에 불어넣은 분위기는 그 제목이 드러내듯 아랑후에스 왕궁과 그 둘레 정원의 것이다. 16세기 펠리페2세 시절에 후안 바우티스타 데 톨레도와 후안 데 에레라의 설계로 세워진 이 왕궁은 그 뒤 몇 차례의 화재로 흉한 모습을 보였다가 페르난도6세 때인 1778년 오늘날 형태로 완공됐다.

아랑후에스 궁전은 전통적으로 스페인 국왕이 봄에 머무르는 별궁 노릇을 했다. 거기 딸린 널찍하고 미려한 정원들은 합스부르크왕조 시대 스페인 문화의 아치(雅致)를 한껏 뽐낸다.

한 때 아랑후에스는 국왕의 친척들이 주로 사는 왕족의 도시였다. 그 점에서 프랑스의 베르사유를 설핏 닮았는데, 아닌게아니라 왕자의 정원 끝머리에 들어선 또 다른 별궁 ‘농부의 집’은 전형적인 베르사유 풍이다. 이 궁전이 농부의 집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본디 이 터가 아랑후에스의 돈 많은 농부 소유였던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파리에서 <아랑후에스협주곡> 을 쓰기 한 해 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의 명성을 세계적으로 만든 선율은 그 짧은 체류에서 잉태됐다. 작곡자 자신이 이 협주곡의 제재로 아랑후에스궁 정원의 목련 향기와 새들의 지저귐, 분수 소리 따위를 거론한 바 있다.

로드리고는 자신이 아랑후에스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얘기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그는 세 살 때 디프테리아를 앓고선 시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술작품이 너무 유명해지면, 그 주제와 제재를 놓고 온갖 해석이 뒤따르는 법이다. <아랑후에스협주곡> 도 그랬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제2악장 아다지오를 두고는, 이 선율이 만들어지기 두 해 전 독일 공군이 자행한 게르니카 폭격과의 연관을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

로드리고는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페르디난도 카룰리와 더불어 클래식기타 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의 기타 솜씨는 볼품없었다 한다. 그 대신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다룰 줄 알았고, 특히 피아니스트로서는 거장이라 이를 만했다. 터키 출신의 아내 빅토리아도 피아니스트였다.

1991년, 로드리고는 후안 카를로스 국왕으로부터 ‘아랑후에스 정원 후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다. 말할 나위 없이, 그가 <아랑후에스협주곡> 의 작곡자라는 사실과 관련 있는 작위다.

로드리고는 1999년 마드리드에서 작고했다. 1901년 생이니, 그의 삶은 20세기와 거의 고스란히 포개진 셈이다. 로드리고와 아내는 아랑후에스 묘지에 나란히 묻혔다. 아랑후에스는 로드리고가 태어난 곳도 죽은 곳도 아니고(그는 발렌시아주 사군토 출신이다), 오래 머문 곳도 아니었지만, 그가 이 도시에 묻히는 것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스페인의 다른 도시들처럼, 아랑후에스에도 카페마다 (일종의) 슬롯머신이 있었다. 철학자는 도박에 다소의 취향과 재능이 있는 친구다.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에는 저 유명한 도박 중독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취가 남아있는 바덴바덴에까지 진출해 제 운을 시험해 보았다 한다.

그의 꿈 하나는 바덴바덴에 다시 가서 돈 걱정 없이 질릴 때까지 도박을 해보는 것이다. 스페인에서, 철학자는 우리가 카페에 들를 때마다 슬롯머신 앞에 앉아 제 재능과 운을 시험했다. 결과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우리 찻값 정도는 버는 게 예사였다. 아랑후에스의 한 카페(아일랜드식 커피와 맥주를 파는 ‘더블리너’라는 곳이었다)에서도 그는 슬롯머신 앞에 앉았는데, 이번엔 딴 돈이 우리 주전부릿값을 사뭇 웃돌았다. 그 집을 나오면서, 마치 무전취식이라도 한 듯해 좀 민망했던 기억이 난다.

‘라나 베르데’라는 식당에서 우리는 늦은 점심을 했다. 레스토랑 이름은 ‘녹색 개구리’라는 뜻이었지만, 우리가 거기서 개구리를 먹은 것은 아니다. 영국인들은 경멸의 뜻을 담아 프랑스인들을 ‘개구리 포식자(frogeater)’라 부른다고 하는데, 스페인 사람들도 개구리를 먹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녹색 개구리’에서 연어와 안심을 먹었다. ‘녹색 개구리’ 식당의 창 밖으로 타호강이 내려다보였다. 아랑후에스는 타호강의 발원지에서 멀지 않다. 이 강은 포르투갈의 리스본까지 흘러 거기서 대서양과 만난다. 리스본으로 가야겠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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