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감정을 억제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더 이상 나처럼 불행한 아비가 없기를 바란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몇 가지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기며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수감됐다.
비슷한 시기에 지방에선 또 다른 한 아버지가 맞고 들어온 중학생 아들을 보고 보복을 하겠다며 나선 사건이 신문 한 귀퉁이를 장식했다. 물론 김 회장 일이 없었다면 조그맣게라도 뉴스거리가 되지 못할 일이었다.
그 뉴스는 'A씨는 B군 등이 자신의 아들을 때렸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가 B군 등을 불러내 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A씨는 불구속 입건됐는데,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A씨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에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 경찰과 조폭에 대한 관찰의 시작
김 회장은 왜 구속됐는가. A씨는 왜 구속되지 않았는가. 인신구속이 어느 정도의 법정판결과 같은 효과가 있기에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고 있다. 간추리면 '김 회장'으로, 'A씨'로 다르게 기사화 했던 바로 그 이유다.
김 회장을 구속하면서 법원은 '증거인멸의 우려가 농후하다'고 밝혔는데 구속 사유로 정확하며 모범적인 결론이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은 찜찜한, 음식이 목에 걸린 듯한 무언가를 남기고 있다. 경찰의 행태와 조폭의 문제다.
이번 사건이 한 달여 지나 불거지면서 그것은 경찰과 한화의 '제로 섬'게임으로 비화했다. 김 회장이 구속되거나 경찰(경찰청 광역수사대? 서울 남대문경찰서?)이 부서지거나 둘 중 하나는 끝장이 나야 하는 상황으로 진행됐다.
그런 정황을 알기에 김 회장을 구속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스스로 면죄부를 받아 든 것처럼 여기는 것은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 서울의 남대문경찰서가 어떤 곳인가. 한때 서울 명동을 담당하던 중부경찰서와 함께 대한민국의 폭력계와 유흥가를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장악하고 있는 곳이 아닌가.
'A씨' 사건이 언론에 묻혀버린 것과 같은 맥락에서 '김 회장' 사건이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서 열흘 이상 언론의 각광을 받은 이유다. "김 회장 못지않게 돈도 있고 빽도 있다는 당신은 우리 아이들에게 해준 일이 뭐 있느냐"라는 속칭 강남아줌마들의 남편에 대한 농담(항변)은 이번 사건이 남긴 또 다른 면을 풍자하고 있다.
또 하나 명백히 간과된 사안이 있다. 보복폭행이 이뤄졌다는 유흥가 북창동과 조폭의 관계다. 김 회장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나왔다는 '화해 보상금 80억원' 이야기가 우리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있다.
"○○파와 △△파가 북창동 유흥가를 장악하고 있는데, 이번에 문제된 조폭은 소수계열인 ◇◇파여서 그들 사이의 알력이 사건을 키웠다"는 분석이 경찰쪽에서 흘러나왔다는 게 어이없다. 불과 열흘여 만에 법원으로부터 '인멸의 우려'를 확인 받은 증거와 정황들을 속속들이 파헤칠 수 있는 그 '잠재력'에 대해 경찰은 해명해야 한다.
"나는 피해자"라고 말한 김 회장 아들의 말이 아버지의 행동 때문에 묻혀버린 대목도 이제는 살펴야 한다.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 다닐 만한 술집에서 그가 사소한 시비 끝에 얼굴에 열 서너 바늘을 꿰매야 하는 폭행을 당했다면, 그러한 밤거리를 방치하고 조장하는 사회가 정상일 수 없다.
● '마녀사냥' 끝, 제2수사 주목된다
사건을 지휘하고 있는 검찰이 "이제부터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대목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이 김 회장의 구속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했던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앞으로 검찰은 이 사건이 남긴 사회적 파장과 부조리를 면밀히 추스려야 한다. 심하게 비유하면 '이제 마녀 사냥은 끝났다.' 국민의 관심도 홀연히 사그라졌다.
하지만 언론은 보복폭행 사건의 '속보'를 꼼꼼히 챙길 것이다. 그것은 한화나 김 회장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생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제2의 수사가 크게 기대되는 이유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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