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가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개최한 '세계경영자회의'에는 세계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경영자들이 몰려 들었다. 주제 발표자는 잭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과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당시 도요타자동차 회장이었다. 잭 웰치 회장의 명성은 지금도 높지만 그때는 절정이었다.
그런 그가 작심한 듯 일본식 경영을 질타했다. 각종 사업부문 매각과 인원정리를 축으로 자신이 단행한 GE의 구조조정 사례를 들어 "사람과 사업을 잘라내지 못하는 경영자는 무능할 뿐만 아니라 범죄적"이라고 단언했다.
■오쿠다 전 회장의 반론이 시작됐다. 그는 "당연히 해야 할 투자나 재건 노력을 외면한 채, 눈앞의 수익 확보를 위해 사업을 매각하는 것은 본말전도"라고 사업매각 방식의 구조조정을 비꼬았다. 그는 또 "기업 경쟁력의 원천은 인간존중"이라는 말로 인원정리를 비판하고, '종신고용제'를 옹호했다.
당시 '종신고용제' 비판은 세계적 유행이었다. 잇따른 영업실적 향상에도 불구하고 도요타자동차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면서, 무디스가 '종신고용제 유지'를 이유로 들 정도였다.
■논쟁은 결국 '주주 자본주의'와 '회사 자본주의'의 충돌이었지만, 적어도 '사람 자르기' 여부를 둘러싼 두 사람의 경영철학은 확고해 보였다. 웰치 회장은 이익을 내지 못해 낮은 평가를 받는 부문에서 계속 일하게 해서 상대적 열패감을 안기기보다, 그 일을 주력으로 삼는 다른 회사에서 떳떳하게 일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반면 오쿠다 전 회장은 연구개발과 고도의 품질관리를 최우선으로 삼는 기업조직에서 고용 보장은 가족적 유대와 자발적 충성심의 토대이자 궁극적 생산성을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상징한 GE와 도요타자동차, 나아가 미국과 일본 기업의 경영방식의 차이는 그 뒤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근의 정년 연장에서 보듯 '종신고용'의 속살은 오히려 두터워졌는데도, 일본 기업의 체력은 더욱 튼튼해진 듯하다. 이에 비해 외환 위기 이후 인원정리를 중심으로 시끄럽게 행해진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은 무엇이었나 싶다.
인건비 절감에 따른 반짝 호황을 누리는가 싶더니 이내 약한 체력을 드러내고 있다. 환율 요인이 크다지만 일본기업이 달러당 80엔까지 견딘 데 비추어 과장된 핑계로 들린다. 정부 규제가 투자를 가로막는다는 말도 반복되다 보니 점점 그렇게 들린다. 핑계가 길어지면서 기업의 철학의 빈곤만 뚜렷해지고 있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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