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우물을 파야 성공한다’는 문구가 낡아빠진 관용구처럼 비쳐지는 게 요즘 현실이지만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화려함으로 치장한 외길 인생의 성공의 뒤에는 피 말리는 사투의 시간들이 내재해 있기 마련이다. 유닉스 전자 이충구 회장(67)이 걸어온 길도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하루하루 폭탄을 들고 잠이 드는 시간”의 결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30여년 동안 헤어드라이어로 세계 일류를 넘보는 우리시대의 진정한 외길 신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가 판매한 헤어 기기는 2,000만대로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 560배의 높이에 달할 정도다.
●헤어기기와 사랑에 빠지다
이 회장은 청년기에 잘 나가는 회사원이었다. 건전지 업체인 호남전기에서 기획 영업 무역 총무 등 핵심 부서를 고루 거치며 고속 승진해 서른 후반에 임원에 올랐다. 하지만 1978년 ‘적은 것이라도 내 수준에 맞는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사업 아이템은 헤어드라이어. 일본 출장을 다니면서 헤어컬(브러시가 달린 헤어드라이어)이 대유행이라는 데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70년대 후반 일본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헤어컬 수요가 급팽창했고,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이미 암시장에서는 수입 헤어컬이 팔리고 있었지만 국산은 그럴싸한 제품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제품만 만들면 팔리는 건 시간 문제였다.
하지만 6개월 만에 내놓은 제품은 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전자제품 취급업소와 방문 판매업자들로부터 반품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일본 제품을 본 따 급하게 만드는 바람에 품질이 조잡한데다 일반인들에게는 아직 헤어컬이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는 철수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무작정 물러설 수는 노릇이었다. 이 회장은 직접 공단 여성 근로자들을 찾아가 헤어컬 사용법을 시연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방법을 착안했다.
대부분 판매가 부진했지만 유독 공단 근로자를 상대로 한 방문판매에서만은 좋은 수익을 올리는 데서 착안한 판촉 방법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후 80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인기상을 수상하는 것을 비롯해 ‘88올림픽 상품 품목’으로 지정(83년)되는 등 승승 장구했다.
그러나 품질향상은 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 회장은 84년 선진 기술을 배울 요량으로 일본 헤어드라이어 제조업체인 사또에 제품을 들고 갔다가 ‘어떻게 이런 제품을 할 수 있느냐’는 힐난만 당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한국에 투자라도 하자’며 수 차례 설득한 끝에 기술제휴와 자본합작을 이뤄냈다.
수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또와 합작을 한 지 3년 만인 78년 일본 샤프에 헤어드라이어 2,000개를 납품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일본 업체와 합작으로 기술력도 향상됐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납품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샤프측에서 “개발 품질 생산 책임자와 같이 오라”는 연락이 왔다. 대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정작 하루종일 회의를 하면서 들은 것은 격려와 칭찬이 아닌 100여 개가 넘는 지적 사항이었다. 샤프측은 제품의 품질뿐만 아니라 포장 밴드의 간격과 설명서 삽입 방법 등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따졌다.
이 회장은 “회의가 끝나고 난 뒤 진이 빠져 일주일을 몸 져 누웠다”며 “‘제품마다 설명서를 일관된 방향으로 넣으라’는 요구를 들었을 땐 일본 회사의 철저한 품질관리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품질향상에는 타협이 없다
그 일을 계기로 품질 만큼은 진저리가 날 정도로 챙겼다. 대학교와 연구소에 디자인과 기술 용역을 의뢰하는 등 이윤의 상당부분을 기술개발과 디자인 향상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부터 삼성과 LG 등 대기업에 납품을 시작했고, 95년에는 세계 최초로 정전기가 없는 ‘음이온’ 헤어드라이어를 생산해 냈다.
이것도 모자라 품질 결함이 생기면 손해를 보더라도 모두 회수하는 무한책임 방식을 채택했다. 이 회장은 2002년 세계 최대의 이ㆍ미용기기 업체인 미국의 훠룩사에 납품한 헤어드라이어 5만대를 회수해야 하는 위기에 몰렸다. 미국 진출의 꿈이 산산 조각나는 순간이었다. 철두철미한 품질 테스트에서 합격한 제품들이라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훠룩 측은 미국인들이 헤어 기기의 전원 선을 확 뽑는 등 대체로 거칠게 사용하는 점을 감안해 품질 테스트를 해 본 결과 각종 결함이 발견됐다고 통보해 왔다. 그는 수십 억원의 손해를 봐야 했지만 따지지 않고 전량 회수 조치했다. 훠룩에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마저 포기했다. 바이어에게 품질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후 훠룩은 이 회장에 대한 신뢰가 쌓이면서 유닉스 전자에 1,100만원 달러를 투자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회장은 “만약에 당시 내가 회수 조치를 하지 않고 버텼다면 거래가 끊겼을 것이라는 얘기를 훠룩 관계자에게 전해 들었다”며 “품질은 세계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고라 강조했다.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 유닉스 전자, 스팀청소기 등 발 넓혀…
유닉스 전자는 헤어드라이어, 헤어컬, 고데기 등을 제조하는 헤어기기 전문업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스팀진공청소기 등 소형 가전 분야로 발을 넓히고 있다. 수년동안 축적된 품질개발 능력을 기반으로 소형 가전 전문업체로 발돋움하겠다는 장기 목표에 따른 행보다.
현재 유닉스 전자의 헤어드라이어 국내 시장 점유율은 60%선. 필립스, 내쇼날 등 소형가전제품 시장에서 다국적 기업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헤어드라이어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닉스의 저력은 해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현재 헤어기기 한 아이템으로 달성한 세계 시장 점유율은 25%에 달한다. 수출 국가만 전세계 68개국에 이른다. 특히 미국에서 팔리는 헤어드라이어는 120달러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헤어드라이어에 속한다.
이런 여세를 몰아 유닉스 전자는 지난해 스팀청소기를 내 놓았다. 단순히 스팀기능만 있던 기존의 스팀청소기에 진공청소기능까지 결합한 제품이다.
유닉스의 끊임없는 연구의 결과 물은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은 제품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유닉스 전자는 95년 드라이 할 때 생기는 정전기를 없애는 음이온 드라이어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또 머리카락에 비타민을 제공해 주는 비타민 드라이어와 열이 식으면 색깔이 변하는 고데기 등 기발한 제품들이 수없이 많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미용사들이 일본 출장을 가서 유닉스전자 헤어드라이어를 일본 제품인 줄 알고 사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4년부터 2년 연속 미국 7만5,000명의 헤어 디자이너들이 선정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 이ㆍ미용기기로 선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기술개발을 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음이온 드라이어는 95년 첫 출시됐지만 빛을 본 것은 최근이고, 90년대 초반에 만든 공기청정기는 소비자 인식부족으로 사업을 접기도 했다.
이충구 회장은 “유닉스가 만든 제품은 항상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며 “헤어기기는 소형가전 제품의 명품 반열에 올랐다”고 말했다.
안형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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