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선진사회, 강한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노조가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인터뷰에서 이 위원장은 노조가 소수자 입장에서 요구만 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은 하고 노사관계 발전방안도 먼저 제안, 정부나 기업을 이끄는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대립하고 있는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궁극적으로는 하나가 돼야 한다면서 “그러나 통합을 막는 민노총과 한국노총의 극단세력은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_노조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큽니다.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노사관계가 없었습니다. 기업주들은 노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고기업인 노키아, 도요타는 노사가 함께 기업 가치를 높이려고 애씁니다. 도요타 노조는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찾습니다. 때문에 노조는 기업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 기업가들도 그런 노조를 원한다면 노조와 함께 가야 합니다. 불행히도 그런 발상이 없습니다. 노조도 똑같습니다. 민주화를 위한 정치적 조합주의가 지금도 계속되는 노조가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순수성을 외면하고 이념과 결부시킵니다. 전근대적인 경영자나 전투적 노조 모두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할 수 있지요.”
_그렇다면 한국의 미래를 위해 노동운동이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노동운동이 돼야 합니다. 개개인의 삶이 존중되고 질이 높아지도록 하는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으로 가야 합니다. 특히 대화와 타협이 중시돼야 합니다.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투쟁성과 대중성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투쟁은 수단이어야지 목표가 돼서는 안 됩니다.”
_‘사회개혁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개혁 대상이 노조입니까, 사회 전체입니까.
“사회 전체가 대상입니다.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선 정부나 사용자가 할 일이 있고 노조가 해야 할 몫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노조는 요구만 하고 책임을 분담하지 않습니다. 사회 문제들은 어느 한편의 노력으로만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부, 기업, 노조가 서로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합니다. 노사정 위원회에서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고 한국노총이 국가 IR에 가는 것이 그 일환입니다. 외자유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서 ‘노조의 조직율이 10%이고 그 중에서도 분규현장은 1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노조가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외국 투자자들의 믿음이 생겨 투자가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생깁니다. 이런 것이 바로 사회개혁적 노동운동입니다.”
_민노총은 그런 점을 들어 이 위원장을 어용, 경영자총협회 회장이라고 비난하더군요.
“노조는 항상 마이너여야만 합니까. 메이저 역할을 할 때는 해야 합니다. 주인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경총 회장 운운하는 것은 스스로를 마이너로 설정하는 것입니다. 노조가 먼저 노사발전 방안을 제시해 정부나 경총을 끌고 갈 수도 있어야 합니다.”
_경제성장이 주춤한 분위기입니다. 보수세력은 타개책으로 성장을 제시합니다.‘성장=일자리 창출=복지’라는 논리가 상당히 먹히고 있습니다.
“경제만 되면 다 해결된다는 식의 논리는 지극히 미국적입니다. 공존을 강조하는 서유럽식이나 북유럽식도 있지 않습니까. 저는 국민들이 보수나 진보에 대해 뚜렷한 개념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개혁 피로감이 쌓이니까 보수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지 그게 맞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_노선과 방향을 놓고 민노총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없으십니까.
“어느 한 쪽이 대화하자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민노총은 자기 식이 아니면 적대적으로 대합니다. 이래서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대화 노력은 하겠지만 한국노총이 당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이 극단적으로 나오면 우리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_통합을 얘기하기가 곤란한 분위기군요.
“그래도 원칙은 통합입니다.”
_이석행 민노총 위원장과 인간적 신뢰가 있으니까 통합의 방법론을 토론할 수는 있지 않습니까.
“토론을 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최저 조직율의 약체인데 세계 최강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민노총의 일부 세력은 한국노총과의 통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한국노총의 극우세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양 노총의 극단을 배제한 상태에서 중도 좌에서 중도 우까지 통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_구체적 문제로 들어가 보시지요. 민노총은 지난해 9월 자신들이 빠진 노사정의 노사 로드맵 합의 때 한국노총이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유예시키려고 복수노조 등 다른 것을 희생했다고 합니다.
“민노총은 항상 말이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민노총의 복수노조 여론조사에서 80%가 반대했습니다. 노조가 하나 더 생기면 대표성에 문제가 생기니까요. 그러나 저는 복수노조 찬성론자입니다. 조준호 민노총 전임 위원장은 속으론 부정적이면서 겉으로는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양대 노총은 노사 로드맵 합의 전에 수없이 만났고 민노총은 우리에게 총대를 매달라고 했습니다. 합의서를 쓴다고 전화를 했더니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발표하니까 뒤통수를 치더군요. 비겁하고 비열합니다. 더 큰 문제는 리더십이 없다는 점입니다.”
_노조전임자에 임금을 주는 나라는 별로 없지 않습니까.
“없죠. 그러나 주지 말라고 법으로 규정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기업별 노조는 미국 일본 외에는 없고 대부분 산별노조입니다. 우리도 산별 체제로 간다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노조 기금이 4000억~5000억원 됩니다. 이 돈이 한 군데 집중되면 못할 일이 없는데 7,000~8,000개 기업으로 나눠져 수련회, 교육 등으로 쓰이고 맙니다.”
_전임자 임금을 금지시키면 노동운동이 위축된다는 말입니까.
“위축 수준을 넘어 아예 없어질 것입니다.”
_한국노총은 직권중재 폐지를 성과로 꼽습니다. 민노총은 한국노총이 직권중재 폐지 대신 대체근로 허용을 수용, 파업을 무력화시켰다고 비난합니다.
“비겁한 사람들입니다. 대체근로와 직권중재 폐지를 놓고 양 노총이 수없이 토론했습니다. 그 결과 직권중재 폐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얻으면 줄 게 있어야 합니다. 민노총은 100을 따내고 양보하면 죽일 놈이라고 얘기합니다. 미친 사람이나 할 얘기지, 노동운동가들이 할 얘기는 아닙니다.”
_이 위원장의 의지가 반영된 노사발전재단이 출범했습니다. 정부의 노동교육, 복지 등의 이관을 요구했는데 정부가 거부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발전시킬 생각입니까.
“제대로 된 노사관계가 저절로 이루어집니까. 노사가 공동으로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복지, 교육뿐만 아니라 직업훈련, 조사연구 등 숱하게 많습니다. 필요한 재정은 우리가 낸 고용보험에서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노사안정과 기업가치 상승을 위해 노사공동의 조직을 만들자고 해서 나온 것이 노사발전재단인데 정부가 일도 안 내놓고 지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_노동부장관을 설득해보셨습니까.
“장관을 설득하면 차관에서 막히고, 차관을 설득하면 본부장에서 막히고, 그리고 국장, 과장으로 내려가면서 막힙니다. 지난달 29일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 얘기를 했습니다. 대통령은 이해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관료들은 절대 밥그릇을 안 내놓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안 내놓습니다.”
_비정규직 보호법이 7월부터 시행되니까 일부 기업들이 비정규직을 미리 해고했습니다. 대책이나 대응은.
“완벽한 법은 없습니다. 노사정 합의 때 법 시행 후 부작용을 2차, 3차 입법을 통해 보완하기로 했습니다.”
_한미 FTA에 대해 한국노총은 원래 범국민운동본부에 소속돼 반대 입장을 취했는데 합의 후 후속대책기구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왜 입장이 바뀐 것인지요.
“바뀐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반대했던 것은 졸속으로 하지 말고 사전 대책을 세우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책기구 만들자고 하니까 민노총은 어용이라고 비난하더군요. 한 번 물어봅시다. 국가간 협정이 무효가 된 적이 있는지. 무효화가 안 된다면 사후대책을 정부에게만 맡기지 말고 노조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마련해보자는 것입니다.”
_지난달 대통령 만났을 때 ‘한국노총이 FTA를 지지하면 청와대는 노사발전재단을 지원해준다’는 밀약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어디서 소설을 썼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4명이 들어가 노사발전재단을 설명하는데 40분이 걸렸습니다. 초점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노사발전재단만 얘기했습니다.”
_이번 대선에서 한국노총이 공개적으로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했는데 지향점이 비슷한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것인지, 대세를 장악한 후보를 지지해 정책적 지원을 받겠다는 것인지요.
“지향점을 택할지, 대세를 택할지 모릅니다. 지난달 87만 명 노조원 전체를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 73%가 대선후보 공개 지지에 찬성했습니다. 지지후보 투표는 10, 11월에 하겠지요. 과거에는 지도부가 결정을 내렸지만 이제는 대중이 선택하도록 한 것입니다.”
_민노당은 섭섭하겠습니다.
“자기들이 잘하면 당연히 그리로 갈 것입니다. 노동자 정당은 분명 매력이 있으나 우리나라에는 민노총만을 대변하는 정당이 있을 뿐입니다. 한국노총에서는 절대 민노당이 선택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용득 위원장은
인기 강사다. 1주일 3, 4차례 강연에 나선다. 그만큼 초청이 많다. 노동단체만 초청하는 게 아니라 경영자총연합회, 정부 부처에서도 강연 요청을 한다. 합리적 노동운동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강연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영자 모임에서는 노조를 꺼리는 기업주의 전근대적 발상을 질타하고, 공무원 대상 강연에서는 '철밥통을 깨라'고 주문한다.
온건한 노선과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술도 잘 마시고 다혈질이다. 그의 심기가 불편하면 노총 분위기가 가라앉는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그는 금융노련위원장 시절 주택ㆍ국민은행 합병 저지파업으로 1년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민노총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얘기한다.
1953년 경북 안동 생
덕수상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1986년 상업은행노조위원장
1990년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연맹 상임부위원장
1996년 한국노총 교육국장, 조직국장
1998년 한국노총 금융노련 위원장
2000년 금융노련, 최초로 금융산별 노조로 전환
2001년 전태일노동자상 수상(한국노총 인사로 최초)
2002년 한국노총 개혁특위 공동위원장
2004년 한국노총 위원장
현재 한국노총 위원장(재선), 중앙노동위원회 심판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 노사정위 상무위원, 노사발전재단 공동이사장
이영성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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