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을 구매하고 소비하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효용과 경제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상품이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를 갖춤으로써 정신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중ㆍ상류 층일수록 상품의 진열과 자극을 즐기는 반면, 하류층의 소비는 가정 용품 같은 생필품에 치중되는 경향이 이렇게 설명된다.
식당에서의 소비는 메뉴 뿐 아니라 식사 예절 등에서도 차이를 보이며, 고가의 외제 브랜드, 값비싼 여행, 음악회 등 소위 명품의 소비는 품격과 권위를 상징하며 다른 계급의 접근을 배제하는 기호가 된다.
■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계급에 따라 차별적인 소비양식이 다양하게 교차되면서 계급 간 구별 짓기가 시행되고 특정한 문화적 성향이 생긴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프랑스 상류층은 고급 극장, 오페라 전람회 등을 통해 그들만의 독특한 생활 패턴과 사회의식, 기회 등을 형성해 간다.
이러한 다양한 문화적 체험으로 정체성을 다져가고,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생활양식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다른 계급에겐 접근이 불가능한 엄청난 고가의 상품 소비이다.
■ 상징의 소비를 통해 축적되는 예절 취향 학력 지식 교양, 그리고 관계망 등을 부르디외는 경제자본과 구별해 사회자본, 문화자본이라고 불렀다. 상류 계급의 과시소비론을 주창한 미국 경제학자 베블런은 "명성을 얻으려면 낭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지출은 낭비적이지만 바로 쓸 데 없는 데 돈을 쓴다는 사실이 명성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시간과 노력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지 않고는 명예로운 부(富)의 증거를 만들 수 없다. 사어(死語) 신비학 철자법 수사법 작시법 가정음악 최신의상 가구 장신구 유희 스포츠 개 경마 등에 관한 지식이 부의 증거로서의 지식이라고 그는 예시했다.
■ 올들어 서민들이 주고객인 중고차와 소형차의 판매가 늘어난다고 한다. 이렇게 서민지갑이 열리는 것을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형적인 경기회복기의 모습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턱도 없는 마진으로 과시 마케팅의 봉으로 지적되는 한국의 수입 자동차 업계는 전혀 다른 소비가 벌어지는 세상이다.
"자신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에 비싸야 더 잘 팔린다"는 전형적인 '베블런 효과'가 이 시장의 동력이다. 그러나 이런 상류 소비층이 상류문화의 '무엇'을 만들지는 못하는 게 한국이다. 김승연 회장 같은 이가 그 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