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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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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아버지의 이름으로"

입력
2007.05.1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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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는 성직자였다. 부모님이 주신 영감은 아직도 내 도덕적 나침반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뒤를 이어 차기 총리가 될 것이 유력한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11일 노동당 당수 선거 출마선언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끌어 갈 영국의 미래에 대해 말하면서 “부모님은 내게 청렴과 품위, 그리고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하고 존경하는 데 대한 중요함을 가르쳐 주셨다”면서 장로교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강조했다.

영국 신문들에 따르면 조선업 지역이었던 스코틀랜드 고반에서 목사 생활을 처음 시작한 아버지 존 브라운은 아들들에게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 “남에게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늘 말했다.

뛰어난 인품과 설교 솜씨로 존경 받았던 브라운 목사의 주된 관심사는 사회정의와 기아와 퇴치였다. 1998년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브라운 목사는 82세의 노령에도 아프리카 빈민들을 도와야 한다는 열정으로 기독교구호단체 ‘크리스천 에이드’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 노력했다. 언론인 제임스 노티는 저서 <라이벌> 에서 “브라운 목사는 설교와 인간성의 힘으로 정평이 난 놀라운 인물이었다. 신학과 사회적 관심은 그에게 뗄 수 없는 것이었다”며 “성인과도 같은 사람”이었다고 평했다.

브라운 장관의 가족 중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는 또다른 사람은 아내 사라 브라운(47)이다. 더 타임스 등 영국 신문들은 블레어 총리의 부인 셰리 부스가 힐러리 클린턴 타입이라면, 사라 브라운은 로라 부시 여사와 비슷한 가정적인 스타일이라고 평하고 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인권 변호사라는 자신의 일에 충실했던 했던 셰리와 달리 사라는 결혼 전 홈스봄-머콜리라는 홍보회사의 창업주로 성공적인 직장여성의 길을 걸었지만 결혼 후 1년 뒤에 직장을 떠났고 성도 남편 성을 따랐다.

셰리가 자서전과 순회 강연으로 큰 돈을 벌면서 비싼 옷을 잔뜩 구매하고 종종 튀는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반면, 사라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싫어해 남편과 중요한 정치 행사에 함께 나서는 것도 꺼리며, 패션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지난해 9월 맨체스터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 때는 사라가 경호원이나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 둘째 아들은 포대기에 싸서 업고 맏아들은 유모차에 태워 밀면서 보통 주부처럼 검색대를 통과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현대적이고 지적인 여성인 사라가 정치인 남편을 내조하는 완전히 전통적인 역할에만 머물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숙아로 태어난 첫딸이 태어난 지 열흘 만에 숨지자 사라는 ‘피기뱅크키즈’라는 자선단체를 만들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이 단체는 출산 및 태아와 관련한 연구도 지원한다. 사라는 이밖에도 교육자선단체 ‘샤인’, 암환자들을 위한 ‘매기암치료센터’,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위한 ‘위민스 에이드’ 등을 후원하고 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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