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의 경선규칙 ‘중재안’이 수용되지 않거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양측이 다른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대표직은 물론 의원직까지 버리겠다고 공언했다.
좋게 보자면 당 대표로서 모처럼 발휘한 ‘지도력’을 지켜내기 위한 정치적 배수진의 결단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현실이나 이렇게까지 문제를 키워온 그 동안의 경과를 생각하면 오히려 대단히 이상하고도 과장된 몸짓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우선 그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중대 결심’의 이유가 명백하지 않다. 그는 “경선 규칙 논란으로 당이 혼란에 빠져서는 안 된다”며 “정권 교체가 이뤄질 수 없다면 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경선 규칙을 둘러싼 당내 혼란이 정권교체 실패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은 최근의 당 지지율 저하 등에 비추어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당의 혼란’을 근본적 사퇴의 이유로 삼은 것은, 4ㆍ25 재ㆍ보선 참패 직후 ‘당의 혼란’을 막는 게 지도부의 우선적 책무라며 인책 사퇴론을 차단하던 때의 논리와는 사뭇 동떨어져 있다.
현재의 경선 규칙 논란이 엄밀한 의미의 중립적 중재안이라기보다는 이해득실 판단이 비교적 뚜렷한 제안을 둘러싼 것임을 고려하면 그의 사퇴 배수진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의 제안이나 구상에 불과해 상임 전국회의가 안건으로 채택하고, 전국회의가 이를 수용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효력을 갖는 것이지, 당 대표의 제안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는 없다.
애초에 기존 합의의 해석 논란에 지나지 않았던 경선규칙 다툼을 ‘개정안’ 찬반 논란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간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또 일단 그런 논란을 촉발한 이후에는 책임을 지고 이ㆍ박 두 진영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끝내 합의를 끌어내지 못해 ‘개정안’ 채택이 좌절되면 그 때 가서 책임을 지려 하는 것이 대표라는 자리에 합당한 자세다.
생떼 쓰듯 한다고 어느 일방이 쉽사리 양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만큼 강 대표의 냉정하고 합리적인 처신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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