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2일) 새벽 야근을 마치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가다 사람을 칠 뻔한 직장인 오모(32)씨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머리칼이 곤두 선다.
늦은 밤 휘황찬란한 조명을 달고 텅 빈 도로를 달리던 폭주족 중 한명이 오씨 앞에서 곡예를 부리다 넘어졌다. 급제동에 핸들을 꺾어 가까스로 오토바이 운전자를 밟고 가지는 않았지만 오씨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말이라도 붙일 요량으로 오씨가 차에서 내리는 사이 폭주족은 옷을 털고 일어나 미친 듯이 속도를 내 사라져 버렸다.
휴일, 국경일 등의 야음을 틈타 광란의 질주를 해온 폭주족 일당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13일 시내 도로에서 오토바이와 차량으로 교통 흐름을 막고 폭주 곡예운전을 한 혐의로 폭주족 카페 운영자 오모(24)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이모(17)군 등 2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3월1일 오전1~5시 ‘강남연합’ 등 수도권 지역 19개 폭주족 카페 회원들과 함께 서울 성동구 자양동 뚝섬에서 여의도동 한강 둔치까지 시내도로를 오토바이와 승용차 등 차량 300여대로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역주행 등을 하면서 달려 심야 교통체증을 유발한 혐의다. 이들은 전 차로를 가로막고 달리는 일명 ‘드리프트’ 등 곡예운전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종의 행동강령인‘폭칙(폭주수칙)’을 만들어 카페를 통해 유포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폭주 대열을 지휘하는 ‘리더’, 교차로 등에서 일반 차량들을 가로막은 ‘칼받이’, 경찰의 추적을 막고 따돌리는 ‘뒷커버’, 고출력 오디오를 장착해 요란한 음악으로 폭주 분위기를 띄우는 ‘사이더’등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이들은 리더의 신호봉에 따라 진로와 속도를 조절하며 한밤중 도시 도로를 지배했다.
이들의 행동수칙에는 ▦리더는 추월하지 않는다▦폭주를 제지하는 조직이 없을 땐 112로 경찰을 부른다▦경찰이 집요하게 따라붙으면 다른 경찰서 관할 지역으로 넘어간다는 등 내부 규정까지 두고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인터넷 카페에서 만난 한 폭주족은 “상당 수의 폭주족들은 성인이 되면 폭주계에서 은퇴하기도 하지만 자동차로 폭주를 하는 ‘카폭(자동차 폭주)’족으로 신분 상승을 꾀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폭칙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함께 달릴 경우 ‘카폭은 1차선으로 다닌다’고 규정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폭주족은 ‘강남연합 최강폭주’, ‘월미도 폭주카페’ 등 자신이 사는 지역 카페에 가입해 주말이나 공휴일 심야 시간대에 카페별 모임을 갖는다”며 “폭주하기에 좋은 여름이 되면 활동이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강남연합 등 최근 경찰에 적발된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19개 폭주족 카페만 따져봐도 회원 수가 12만명이 훌쩍 넘는다”고 전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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