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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인생] 토박이 말로 감싸안은 밑바닥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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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인생] 토박이 말로 감싸안은 밑바닥 삶

입력
2007.05.1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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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홍석중 선생이 쓴 <황진이> 를 읽었다. 소설 읽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이웃이 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황진이> 를 읽고 좋아서 한번 더 읽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동했다.

사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 기억에 남는 소설이 많지는 않다. 그 가운데 이문구 선생이 쓴 <관촌수필> 과 권정생 선생이 쓴 <한티재 하늘> 이 있다. 둘 다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도 너무나 좋아서 작품 속의 인물들이 책 밖으로 걸어 나와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황진이> 도 마찬가지였느냐고 물으면 그랬노라고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그러나 읽고 나서 한참동안 망연자실해진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도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지족선사, 서화담을 등장시켜 온갖 너스레를 다 떨어서 밥맛이 떨어지게 만든 소설이었는데, 그걸 읽고 ‘이래서 돌아가신 노친네가 너는 잔소리꾼이 되지 말라고 하셨구나’하는 느낌이 들었었다.한학을 공부하신 우리 노친네는 소설가(小說家)를 직역해서 ‘잔소리꾼’으로 풀었다. 그런데 내가 읽은 소설들 가운데 <관촌수필> 이나 <한티재 하늘> 이나 홍석중의 <황진이> 는 ‘잔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관촌수필> 을 읽을 때도, <한티재 하늘> 을 읽을 때도 서산이나 안동 지역의 토박이 말이 이해되지 않아 어지간히 애를 먹었는데, 홍석중판 <황진이> 도 그점에서는 오십보백보였다. 그래서 어휘력에서 나보다 더 윗길이라고 보기 힘든 이웃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모르는 말이 더러 눈에 띄지 않더냐고… 그랬더니 처음에는 모르는 토박이말들이 너무 많아 답답하게 여겼는데,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아서 내처 읽었다고 대답했다.

이 세 작품에 공통점이 있다면, 토박이 말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마치 처음 보는 예쁜 꽃처럼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것과, 지지리도 헐벗고 가난하게 사는 밑바닥 삶에서 우리 역사를 건강하게 지탱하는 힘이 나온다는 일깨움을 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윤구병ㆍ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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