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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한민국 저질 드라마

입력
2007.05.11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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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아니, 이 불쾌한 감정의 정확한 이름은 짜증, 그것도 왕짜증이다. 이유는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불쾌한 저질 드라마가 양쪽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짜증이 나는 것은 이 드라마가 일곱 달 뒤인 12월 19일 강제로 종료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고, 멈추려 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청년 백수가 얼마이고, 마흔 넘으면 직장에 붙어 있기 어렵고, 같은 일을 해도 차별 대우를 당해야 하는 비정규직이 우리 경제의 주축이고,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는 점점 커지고, 경제와 산업은 중국과 일본에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탈출구를 찾기 어렵고 등등, 2007년 대한민국을 우울한 표정으로 스케치할 수 있는 방법은 한둘이 아니다. 보수를 외치는 일부 언론의 지적이 맞았다면 나라가 망해도 열두 번은 망했을 것이다.

● 짜증나게 하는 대선 주자들

그러나, 그러나 나라가 그리 쉽게 망하지는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리 죽을 쑤어도 단군 이래 5,000여 년을 이어왔고, 유사 이래 최고의 소득을 누리는 나라가 하루 아침에 망하지는 않는다. 점심을 굶고, 집에 컴퓨터가 없어서 학교 숙제를 못해 가는 아이가 많아도, 그 아이가 서울대 가지 말란 법도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일제 강점기를 넘기고 6ㆍ25를 겪고, 서슬 퍼런 독재 시대를 살아 남아 민주화까지 쟁취한 대한민국 사람들이 노모라는 한 사람이 약간의 짜증스러운 코미디를 5년간 한다고 해서 쉽게 죽을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대통령 임기 한 타임만 더 가면 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지금 당장 노 대통령 같은 사람을 한 번 더 다시 뽑으면 나라가 망할지 모른다는 걱정을 갖는 이유는 임기가 7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직책과 무관한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써서 분란만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엊그제'닫힌남의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정당을 함께 꾸려온 두 동지(?)에게 "정치를 그만두라"고 비난했다. 그 당이 얼마나 유권자를 피곤하게 했는지는 세상이 다 알거니와 시청자들이 다 보는 앞에서 자기 대사는 하지 않고 같은 주연을 맡고 있는 상대 연기자에게 "너 이제 관둬라"라며 싸움질하자는 식이다. 이런 우스꽝스러운 대사를 듣는 두 사람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연기자이지만 드라마의 기본이 깨진 지는 오래다.

카메라를 돌리면 나오는 다른 집안 사정도 전혀 덜할 것이 없다. 누가 주연을 하느냐야 잘 정하면 되는데 그 주연을 정하는 방법을 가지고 드라마가 시작된 지 1년 가까이 싸우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경부 대운하라는 대사에 그토록 집착하는 남성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비장한 대사만 되풀이하는 여성보다 훨씬 잘못한 것 같다.

그러나 시청자가 보기에는 그 여자가 그 남자이고, 두 남녀를 상품으로 내놓겠다는 '당나라당' 또는 '딴나라당'이라는 별명을 가진 기획사는 도통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 이러다 정말 나라 망한다

며칠 전에 끝난 프랑스 드라마는 이렇지 않았다. 방영 중인 미국 드라마는 더하다. 무시무시하게 똑똑한 여자와 샤프한 흑인 청년이 날마다 싸우는데 싸울수록 그림이 뚜렷해지고 흥미진진해진다. 여기에 공화당까지 합세하면 1년 반 후의 극적인 반전은 얼마나 더 드라마틱해질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선거는 차선의 선택, 또는 차악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좀 재미난 드라마를 볼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배우들이 이렇게 형편 없어서야 차악이라는 말조차 우스워진다.

재미 삼아 하는 얘기면 좋겠는데 이런 연기자들 중 한 사람한테 어쩔 수 없이 나라와 국민을 다시 5년간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걱정이 태산이다. 이러다 정말 나라 망하는 것 아닐까?

이광일 논설위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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