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_호르타(58ㆍ사진)가 10일 2002년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의 새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11일 당선 일성으로 “평화정착과 가난퇴치”를 내걸었다. 독립 이후 처음 실시된 이번 대선은 과반수 득표자를 내지 못해 결선투표까지 진행됐다.
라모스_호르타는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점령(1975~99년)한 25년 간 국제무대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초대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냈고, 지난해 파벌 충돌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마리 알카티리에 뒤이어 총리로 재직했다.
그는 1949년 수도 딜리에서 포르투갈인 부친과 동티모르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자랐다. 컬럼비아대, 헤이그 국제법률대를 나와 옥스퍼드대에서 교수를 했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노암 촘스키와는 20년 지기로 알려져 있다.
그는 75년 동티모르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뒤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호소하기 위해 출국했다가 귀국하지 못하고 기나긴 망명생활에 들어갔다. 그의 출국 직후 동티모르를 점령한 인도네시아는 그를 반역자로 몰아세웠지만, 젊은 망명객은 굴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동티모르 독립 여론을 주도했다. 이런 공로가 인정돼 96년 카를로스 벨로 주교와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에 합병된 이후 살인과 굶주림 등으로 10만여명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는데, 라모스_호르타 자신도 이때 10명의 형제 자매 중 4명을 잃었다.
그는 ‘외교’를 앞세운 비폭력 수단으로 독립운동을 펼쳐 서방에서도 유연한 지도자로 인식돼 왔다. 좌파성향의 독립투사인 프란시스쿠 구테레스 후보에 비해 외국인 투자유치 등에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다.
독립투쟁 과정에서 생겨난 많은 파벌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무당파란 점도 그의 장점이다. 독립 이후 청산되지 않고 국내정치를 흔들고 있는 파벌, 정파, 지역 간 대립을 해소할 적임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정치적 동지인 사나나 구스마오 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은 그의 리더십 발휘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구스마오는 정치 수반인 총리 자리를 노리고 있다.
이태규 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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