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자기의 역할을 제대로 알고, 그 역할에 걸맞게 행동하는 것이 진짜 연극이죠.”
우리에게 연극은 대표적인 무대 예술의 하나이다. 작품 역할에 따라 대본을 읽고 연기를 읽히며 공연을 위해 1년 내내 힘겨운 연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방과후 학교 연극수업을 진행하는 나눔연극 작업소 ‘소풍’ 강사 황윤미(28ㆍ여)씨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연극은 ‘가짜 연극’일 뿐이라고 말한다.
10일 연극수업이 진행 중인 경기 파주시 파주초등학교 3층 음악실 칠판에는 아이들이 얼기설기 적어놓은 벌칙과 규칙 내용이 다양하다. 규칙은 ‘친구 따돌리지 않기’, ‘친구가 다치면 위로해 주기’, ‘동생이라고 얕보지 않기’ 등이다. 이런 규칙을 어기는 아이들에겐 ‘재미있는 놀이에서 빼기’, ‘생각 의자에 앉아 있기’ 등의 벌칙이 주어진다.
황씨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1학년과 2,3학년 학생들이 스스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만든 규칙과 벌칙”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들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놀이를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가혹한 벌칙이다. 그래서 교실 한 귀퉁이에 벽을 향해 있는 ‘생각하는 의자’는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곳이다.
공존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연극
소풍이 진행하는 연극수업은 사실상 놀이에 가깝다. 아이들은 1시간40분 동안 쉴새 없이 놀이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그냥 노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방식을 끊임없는 배우는 ‘생활 연극’이다. 황씨는 아이들에게 ‘마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선생님이라는 단어 자체가 아이들에겐 벽일 수 밖에 없어 항상 별명으로 부르도록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원을 만들어 앉을 때도 원칙이 있다. 친밀감을 느끼도록 반드시 서로의 무릎을 댄 채 앉고, 게임을 할 때는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된다. 여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색하게 여겼던 채원(7)이는 어느새 혜림(7), 민영(7)이의 손을 다정히 잡고 다니고, 수경(9)이는 쓰러진 어린 동생들 일으켜 세우는 큰 언니 역할을 하고 있다. 황씨는 “아이들이 서로를 이해하며 스스로 배역을 찾아가는 가상 연극을 진행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요? 아이들 머리 속에 있지요.
연극수업이지만 발성연습이나 대본 읽기는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연극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작품도 없다. 황씨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작품이요? 그야 아이들 머리 속에 있지요. 솔직히 저도 어떤 연극작품이 나올지 정말 궁금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편의 연극 공연을 위해 1년 내내 한 작품에 매달려 반복 연습을 하는 상투적인 연극교육은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놀이를 통해 스스로 관계를 형성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면 대본과 극본은 아이들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것이다. 황씨는 “연말에 선보일 아이들의 작품은 연극이라기 보다는 스스로 사물을 이해하고 이를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에 가까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수업을 지켜본 방과후 학교 담당 권경숙(45ㆍ여) 교사는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수업 내용이 좋다”며 “수강 대상을 10명으로 제한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권 교사는 또 “대도시가 아닌 지역에선 수준 높은 문화예술단체의 교육을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정부가 지역 학교와 예술문화단체를 연계하는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을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소'외 없는 '풍'요로운 세상 위해 청소년들 대상 연극놀이 개발
■ 나눔연극 작업소 '소풍'은
소풍은'소외 없는 풍요로운 세상'을 뜻한다. 말 그대로 경기 파주ㆍ고양 지역에서 장애인이나 노인 등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교육연극을 진행하는 예술문화 단체이다.
소풍은 2003년 교육연극 및 예술 치료에 관심이 많은 활동가들이 모여 만든 '장애 청소년을 위한 연극놀이'라는 단체에서 출발했다. 1993년부터 아동극 배우로 활동하던 원오현(35ㆍ여ㆍ소풍 대표)씨가 연극을 매개로 소외된 사람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서 단체를 만들었다.
활동 초기에는 장애 청소년 대상의 연극프로그램 개발이 목적이었다. 장애인과 보육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극을 이용한 정서 순화를 통해 일반인들과의 정상적인 관계 형성을 도왔다. 이후 청소년 전문극단 '진동'과 연대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2005년 6월'진동 나눔연극 지원센터'로 명칭을 바꾼 뒤 서울문화재단과 문화의 집 등이 주최한 공모전에 참여하며 경험을 축적했다.
2006년 6월에는 교육연극에만 매진하기 위해 극단 진동과 결별하고'나눔연극 작업소 소풍'을 설립했다. 이후 정신치료 분야를 연극에 접목해 청소년들 대상의 '사회성 증진을 위한 연극놀이'를 개발, 방과후 학교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파주=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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