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폐의 최고액권인 1만원 권의 주인공은 세종대왕이다. 고정 수식어가 된 ‘성군’이란 말은 상투적이기까지 하다. 우리에게 세종대왕은 이를테면 최고의 CEO다. 그렇다면 세종의 인간적 본령, 진짜 어진(御眞)은 어떠했을까. <세종실록> 이라는 정본에 씌워진 윤색을 걷어 낸 이 책은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라는 명제를 구현해 보인다. 요즘 식으로 이름 한다면, 다면평가보고서다. 세종실록>
세종을 가장 자신 있게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 9명을 이 시대로 불러 왔다. 아버지 태종에서 황희, 허조, 박연, 정인지, 수양대군, 김종서, 신숙주 등을 거쳐 300여년 뒤의 지혜로운 임금 정조까지 증언대에 세운다. 세자빈의 동성애 사건 등 당시의 성 스캔들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세종의 모습, 정월 초하루 아침 근정전에서 연주된 음악을 감개무량하게 듣고 있는 장면 등은 세종의 또 다른 인간적 면모를 전하기에 족하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결국 세종 시대라는 특별한 시기의 본질을 이야기하기 위한 도구다. 제도, 권력 쟁투, 정치 철학, 신하들을 다루는 다양한 모습 등 세종이란 인간과 맞물린 다양한 변수들을 총동원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이 여러 모습들을 꿰뚫는 세종 정치의 본질을 나는 아직도 찾지 못 했다”며 세종 시대의 매력을 에둘러 말한다. “세종의 정치를 말하고 쓴다는 것은 어쩌면 장님 코끼리 그리기, 즉 군맹평상(群盲評象)일 수도 있다”며 저자는 세종에 내재된 풍성함에 각별히 경의를 표한다.
마치 역사 소설을 보는 듯 독서에 속도감이 붙는다. 그럼에도 책은 “<세종실록> 안의 무궁무진한 얘깃거리, 수많은 등장 인물, 다양한 의식 절차 등 풍부한 문화 콘텐츠에 비춰볼 때 지금껏 나온 성과는 극히 적다”며 낮춘다. 세종실록>
책은 철저히 사료 중심적이다. <태조실록> <태종실록> 등 조선왕조실록의 관련 부분은 물론 이이의 <율곡전서> , 신숙주의 <보한재집> 등 다양한 문집을 수 차례 통독하고 나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이자 세종국가연구소 연구실장인 지은이는 세종과 정조의 국왕 리더십에 대해 강의중이다. 풍성한 사진과 그림이 손을 보챈다. 보한재집> 율곡전서> 태종실록> 태조실록>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박현모 지음 / 푸른 역사 발행ㆍ292쪽ㆍ1만3,000원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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