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소외보다 더 슬픈 것은 '희망의 부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소외보다 더 슬픈 것은 '희망의 부재'

입력
2007.05.11 23:32
0 0

광주 남구 서동 산동네 쪽방촌에서 홀로 사는 이덕이 할머니.

스물넷부터 혼자 살아온 할머니의 단칸방에는 위장약, 알레르기약, 골다공증약 등 갖가지 약봉지가 뒹굴고 있다. 밥보다 약 먹는 회수가 더 많아 잘 챙겨먹어야 하지만 1,000원짜리 한 장을 마음껏 쓰는 일도 할머니에게는 호사다.

겨울이 닥치면 연탄배달 추가요금부터 걱정이다. 할머니의 집은 산중턱 달동네에 있어 장당 5원씩, 모두 4,000원을 더 내야 한다. 그러나 이 돈은 할머니의 일주일 반찬 값이다.

혼자서 밥 먹는 일이 쓸쓸해 말벗이 있는 양로원이라도 찾고 싶지만 1,000~2,000원이라도 들고 가야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쉬이 그 쪽으로 발을 내딛지 못한다.

시인 박영희(45)씨의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는 쪽방촌의 이덕이 할머니처럼 소외되고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진상(眞相)을 기록한 현장보고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지 등에 실린 15편의 글을 모았다. 그는 2004년부터 3년간 우승열패(優勝劣敗)라는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서 탈락한 우리시대의 하위자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누볐다.

박씨가 만난 사람들은 회생이 어려운 나락으로 떨어졌거나(폐지 줍는 노인, 쪽방촌 독거 노인, 폐광의 병든 광부) 급작스런 경제구조 변화에 맞닥뜨려 생계를 위협 받거나(일용직 노동자, 농민, 퀵서비스 종사자, 덤프트럭 운전사) 혹은 사회의 차별적 시선에 상처를 안고 사는(귀향한 조선족 여성, 몽골인 노동자, 판촉 도우미) 사람들이다.

그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삶과 무관하다며 그저 ‘풍경’처럼 바라보고 있는 이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 목소리는 무기력하고 절망적이다.

복잡한 하도급체계와 폭등하는 기름값에 압박받는 한 덤프트럭 운전자는 “얽히고 설킨 절망의 터널을 지나 누군가 가리키는 그 끝을 바라볼 때 잔별이라도 하나 더 있다면 상처난 희망이라도 품어보려만 여전히 가파른 고갯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자조했다.

두 번의 간척사업으로 바다를 잃어버린 계화도의 한 어부는 “길이 보여야 갈텐디. 그 길마저 보이지 않으니. 이 노릇을 어째야 할지 모르겠네”라고 탄식한다.

국민소득 2만 달러, 3만 달러 시대를 운운하지만 작가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이들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나라가 어찌 ‘부자나라가 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한다.

2007년 현재 기초생활 수급자가 180만명, 보험료를 내지 못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빈곤층이 200만명, 거기에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수급 빈곤층을 합하면 전체 국민의 15% 가량이 절박한 생계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정부와 기업과 언론에 시인은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타인을 밟고 일어서서라도 성공을 거둔 이들의 ‘신화’가 무비판적으로 칭송되는 시대에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또 그 눈물콧물 짜는 이야기…?’라고 짐짓 외면하거나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못한다는데…’라는 냉소를 보내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한발을 빼려 하면 다른 발이 빠져들고 다른 발을 빼려 하면 또 다른 발이 빠져드는 수렁에 빠져 헤매는 이웃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 어떻게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시인의 말에 한 번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아파서 우는 게 아닙니다 / 박영희 지음 / 삶이 보이는 창 발행ㆍ304쪽ㆍ1만3,000원

이왕구기자 fab4@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