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동네 버스정류장에 작은 구경거리가 생겼다. "왜 저렇게 나무를 삭발하는 거야?" "사람에게 나쁜 가스를 내뿜는다는 군." "뭔 소리야? 얼마나 고마운 나무인데." "플라타너스야, 포플라야?" "꽃도 못 피우고, 버짐 같이 지저분한 꼴이 싫어." 플라타너스 가지치기가 한창이다.
서울시내 1,000여 곳, 28만여 주의 가로수는 은행나무 12만주, 플라타너스 9만주, 느티나무 2만5,000주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가로수 가지치기는 고압선을 피하기 위해 한국전력에서 연례행사로 하고 있으며, 강풍에 대비해 지자체들도 수시로 하고 있다.
■ 플라타너스는 이소플랜(VOC)이란 오존원료를 내뿜는다는 유해론이 있다. 대부분의 나무가 이소플랜을 배출하는 건 사실이지만 손익계산을 따지면 수 백배의 순기능을 갖는다. 플라타너스 한 그루는 매일 3.5명이 마시는 산소를 공급한다. 또 대기의 열에너지 36만㎉를 식히는 것은 가정 에어컨 7대를 10시간 가동하는 효과와 같다.
몇 ㎎의 이소플랜을 방출하지만 하루 섭취하는 13g의 오존은 느티나무의 2.5배, 은행나무의 5.5배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청주IC 주변 36번 국도의 플라타너스 숲이 시원한 산소마스크로 사랑을 받는 이유다.
■ '야곱은 플라타너스 푸른 가지를 꺾어 구유 안에 세워놓고 양떼를 모아 그 물을 먹게 했다. 특히 자신의 양들이 교미할 때는 그 나뭇가지를 세워 두었다.
그렇게 태어난 야곱의 양들은 힘이 좋았고, 그래서 그는 큰 부자가 됐다.(성경 창세기 30장)' 그리스에선 미녀 신의 상징으로 기원전 5세기부터 가로수로 섬겼고, 페르시아 정복왕 크세르크세스는 점령지의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도 유독 플라타너스 만큼은 철저히 보호했다. 서남아시아가 원산지인 플라타너스는 로마제국 이후 로마의 대표적 가로수가 됐고, 1910년께 우리나라에도 귀화했다.
■ 플라타너스는 포플라와 함께 일제시대와 1950~60년대를 상징하는 '우리의 가난했던 가로수'다. 껍질이 벗겨져 속살이 드러나면 마치 버짐(옛말은 버즘)이 핀 듯하여 '서양 버즘나무'로 불리지만 학교운동장에서, 노인정 마당에서, 버스정류장에서 도리를 다하고 있다.
어릴 적 플라타너스와 포플라의 차이를 몰랐을 때, 선생님은 "포플라는 글자가 셋이니 3각형, 플라타너스는 5각형 잎을 달고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길을 가다가 가지치기 당하는 나무의 잎이 5각형 손바닥을 닮았으면 "아저씨, 아껴서 잘라주세요"라고 부탁하면서 지나가고 싶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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