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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의 미디어 비평] 엇나간 자식사랑, 빗나간 폭로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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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의 미디어 비평] 엇나간 자식사랑, 빗나간 폭로보도

입력
2007.05.1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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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경영의 재벌 총수와 미국 명문대생 아들, 강남의 호화스런 술판과 여자, 그리고 집단폭행.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만으로도 국민적 관심과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이 사건의 자초지종을 낱낱이 드러내야 한다. 경찰수사와 별도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야 하며, 이참에 사회지도층의 비상식적인 윤리의식과 사회구조적 모순을 폭로하는 탐사보도를 전개할 만하다.

TV리포트에서 보았듯이, 기자들은 회사나 집 앞 혹은 공항출구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소위 ‘뻗치기’를 해가며 특종경쟁을 해왔다. 그런데 이렇게 진실을 밝히려는 언론에 대해 일각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듯하다. 지금까지 무엇을 잘못 보도했기에 밤을 새며 노력하는 취재진에게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것일까?

우선 지적돼야 할 것은 사건 초기 보도에서부터 정보원이나 피해자, 피의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카더라” 식의 추측성 보도를 내보냈다는 사실이다. 국내언론의 추측성 보도는 지금까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데스크나 취재기자는 “앞으로 사실이 보도대로 밝혀질 텐데 무엇이 잘못이냐”고 따질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은 사건 자체가 어떻게 결말이 날 지와 상관없이 현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진실(the best obtainable truth)’을 보도해야만 한다. 이때에도 정보원이나 피해자, 피의자 모두에게 ‘삼각확인’을 거쳐야 한다. 사건발생 50일이 지난 뒤 보도했으면서도 균형감각을 갖추었다고 평가할 수 없다. 사실 확인을 제대로 아니한 채 성급하게 보도한 측면이 분명히 있다.

공영방송의 초기 뉴스를 살펴보자. KBS와 MBC는 4월24일 “재벌그룹 회장이 보복성 폭력을 가했다”는 내용을 엇비슷하게 보도했다. 이날 KBS 뉴스9에 따르면 “김 회장 아들이 경호원들과 함께 다시 이들을 찾아가 사과를 요구했지만 다툼”만 계속됐으며, 이에 “김 회장이 직접 술집에 찾아가 사과를 받아냈다”고 한다.

김 회장 부자가 사건 이후 각각 따로 술집을 찾아갔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아들이 홀로 사과를 받아 내려다가 실패했다”는 내용은 추후 보도에서 사라졌다. 처음부터 확인됐던 아버지 이름은 익명으로 처리됐고, “부자가 따로 술집을 찾아갔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추측으로 보도한 것이다.

이어 4월 27일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는 각각 다섯 꼭지씩이나 내보내며 이 사건을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기 시작했다. 오프닝부터 “그날 밤 무슨 일”이란 의혹을 제기해 나갔으며, 수사지연에 대한 은폐의혹과 함께 “김승연 회장 어떤 처벌 받나”라는 앞서나가는 보도를 했다.

이에 남대문경찰서는 진상을 밝히려는 경찰의 노력이 “언론을 통해 왜곡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대응했다. 한화측도 실체가 드러나기도 전에 이미 “방송이 여론재판”을 다 해버려 “몰매를 맞아 왔다”고 한다. 쌍방폭행 사건이 “TV방송에서 15일 동안 연속적으로 융단폭격을 맞을 만큼 중요한 사안이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방송기자들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재벌회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남용했고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진실을 바로 밝히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했으며 ▲호화 변호인단을 선임해 서민들에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좌절감을 심어줄 수 있는 사건이기에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자세이다. 국민의 분노를 자극할만한 사안이기에 재벌총수의 추문을 낱낱이 폭로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건에 비해 과도하거나 지나치게 앞서나가서는 곤란하다. 진실을 밝히려는 폭로 저널리즘이 ‘난폭 저널리즘’으로 변질된다면 사회정의를 세우는 데도 득이 되지 않는다. 선정적이고 에피소드 중심의 보도가 갖는 한계에 곧 부닥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구조적인 비리세력은 언론보도의 그런 한계를 비웃으며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릴 뿐이다.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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