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캠프는 9일 장시간의 회의 끝에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을 거부키로 했다. 오전부터 시작된 회의는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면서 오후까지 이어졌고, 결국 결론은 ‘거부’였다.
무엇보다 강 대표가 중재안에서 제시한 “국민투표율이 낮을 경우 투표율을 3분의 2로 인정해 여론조사 반영비율에 가중치를 두겠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박 전 대표측 한선교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직접 투표를 한 대의원 당원 등의 표는 한 표로 계산하면서 전화로 여론조사를 한 사람의 표는 두 표, 세 표로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훼손하는 등 보통선거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가 거듭 강조해온 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캠프의 판단이다. 최경환 의원은 “단순히 유ㆍ불리를 따지기에 앞서 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하는 안을 어떻게 받겠느냐”고 말했다.
강 대표는 이날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이 가운데 선거인단수를 20만명에서 23만여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이나 경선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하는 안도 박 전 대표로선 자신들의 ‘양보’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런 마당에 여론조사 가중치 수정안까지 추가됐고, 이에 박 전 대표측은 완강히 고개를 저어버린 것이다. 박 전 대표측 한 관계자는 “선거인단을 늘리고 전국동시경선을 실시하는 선까지만 갔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여론조사 가중치가 더해지는 순간 임계점을 넘어 버렸다”고 말했다.
문제는 중재안 거부 이후다. 앞으로의 선택에 대해선 박 전 대표 쪽 어느 누구도 명확한 얘기를 하지 못했다. 이날 캠프 구성원들에게 함구령이 내려진 채 입장을 정리하는 회의가 길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일단 박 전 대표 캠프는 강 대표의 중재안이 민주주의의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을 알리면서 무효화를 유도할 생각이다. 하지만 강 대표가 이에 굴하지 않고 상임전국위원회의 발의와 전국위원회의 표결을 거쳐 본격적으로 당헌을 고치려고 나설 경우엔 충돌이 불가피하다.
박 전 대표로선 강 대표 체제에 대한 입장을 조만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캠프 안팎엔 강 대표에게 배신을 당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강 대표가 대표직을 보장 받는 조건으로 이미 이 전 시장측에 투항했다”는 소문도 떠돌고, “강 대표가 자기가 살기 위해 박 전 대표를 코너로 몰았다”는 성토도 나온다.
이 때문에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임시전당대회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박 전 대표측에선 나온다. 강 대표 체제를 무너뜨린 뒤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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