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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아버지들이여! 이젠 좀 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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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현의 영화로 보는 세상] 아버지들이여! 이젠 좀 웁시다

입력
2007.05.10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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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들이 웁니다. 엉엉 소리 냅니다.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장진 감독의 영화 <아들> (사진)에서 아버지 이강식(차승원)은 몇 번이고 웁니다. 강도 살인을 저질러 무기수로 복역중인 그가 15년 만에 딱 하루 휴가를 받아 세 살 때 보고 못 본 아들 준석(류덕환)을 만났으니. 아들이 자기를 ‘손님’이라고 말해 울고, 아들과 매일 한 집에서 살지 못하는 처지를 생각해 밥도 삼키지 못한 채 울고, “눈이 무섭게 생겼어요”라는 준식의 말에 화장실 거울 앞에서 물로 눈을 문지르며 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본능으로 알아챈 아들의 슬픈 비밀 때문에 눈물을 쏟아냅니다.

<우아한 세계> (감독 한재림)의 아버지 강인구(송강호)도 끝내 울고 맙니다. 잔인하게 폭력으로 포기각서를 받고, 돈을 받아내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두르는 조폭인 그 역시 고개 숙인 아버지이지요.

딸이 “아빠라고 부르기도 싫다”고 하고, 아내가 한 방에서 지내기조차 거부해도 말없이 베개를 들고 돌아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로서는 그는 누구보다 헌신적입니다. 캐나다로 조기 유학 간 아들의 학비를 위해, 아내 미령(박지영)과 딸 희순(김소은)이 수돗물도 잘 안 나오는 낡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좀 더 좋은 집에 살게 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물론 그도 과감히 조폭생활을 접고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당장 생활이 어려워지고, 아들은 돌아와야 하고, 평생 낡은 아파트를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과연 그런 가난한 아버지를 아이들과 아내가 존경하고 사랑할까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조폭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으로 하고 싶은 것 하고, 사고 싶은 것 십니다. 단지 강인구가 자기 아버지란 사실을 남들이 모르기를 바랄 뿐입니다.

결국 아내와 딸도 캐나다로 가 버립니다. 그들이 찍어 보내온 비디오에는 자신들의 즐거움만 있지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나 미안함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혼자 비빔면을 먹으며 그 모습을 보던 기러기 아빠 강인구는 냄비를 집어 던지고는 눈물을 글썽입니다. 그리고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중얼거립니다. <파이란> 의 건달 강재(최민식)가 바닷가에서 소주를 기울이다 자신의 삶이 서러워 꺽꺽 대는 장면과 함께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울음의 명장면’이지요.

살인범, 조폭, 건달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세상 아버지들은 울고 싶습니다. 죽어라 일하는 것으로 사랑을 드러내지만, 자식들은 ‘걸어 다니는 지갑’쯤으로 여기는 아버지. 존경심은 고사하고 과거 “아버지 오시기만 해봐라” 라는 말로 상징되던 최소한의 위엄조차 사라져버린 이 시대, 누가 그 아버지의 속을 속속들이 알까요.

그러고 보면 <남자, 그 잃어버린 진실> 의 저자인 호주 심리학자 스티브 비덜프의 말처럼 지금껏 아버지들은 연기하며 지내왔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슬픔과 서러움을 감추고 억지로 강한 척한 존 웨인이었지요.

이제는 그러지 말고 서러울 때, 힘들 때, 삶이 허무할 때, 이강식처럼 어린 아들 앞이라도 엉엉 소리 내 웁시다. 마음의 병과 분노와 슬픔은 눈물로만 씻어지며, 인생의 열정도 슬픔을 표현하는 데서 생긴다고 하니까. 때마침 아버지 영화들까지 그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대현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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