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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모네가 옵니다/ '수련'연작 8점 첫 한국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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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모네가 옵니다/ '수련'연작 8점 첫 한국나들이

입력
2007.05.1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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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빛의 화가-모네> 전은 작품의 질과 양에서 국내 최초, 최고, 최대의 모네 회고전이 될 전망이다. 그 동안 가끔 초기 작을 국내에 선보인 적은 있지만, 이번 전시처럼 말년의 걸작까지 전 생애에 걸친 시기별 대표작 60여 점을 망라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수련> 연작이 8점이나 포함된 것은 특히 획기적이다. <수련> 은 모네 예술의 정점이지만, 우리나라 전시에 나온 적은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모네의 <수련> 이 그의 조국 프랑스 바깥에서 이만큼 많이 한 자리에 모인 적도 없다.

이번 전시를 총지휘하는 커미셔너 서순주씨는 “<수련> 은 모네 작품 중에서도 가장 귀중하고 사랑 받는 것이어서 미술관들이 잘 빌려주려 하지 않는데, 3년간 끈질지게 설득하며 공을 들인 끝에 들여오게 되었다”고 전한다. 2004년 샤갈, 2005년 마티스와 야수파, 2006년 피카소 등 대형 전시를 잇따라 만들고 성공리에 마친 그의 경력이 지렛대가 되었다.

◆주제별로 본다

보통 연대기 순으로 작품을 배치하는 여느 회고전과 달리, 이번 전시는 주제별로 작품을 보여준다.

전체를 관통하는 큰 주제는 ‘물의 풍경’이다. 모네는 물의 작가이다. 그의 삶엔 언제나 물이 있었고 그의 그림은 바다, 강, 연못 등 물의 풍경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대서양 연안 르아브르에서 바다를 보면서 자란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43세 때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정착하기 전까지 센강 변을 따라 계속 거처를 옮겼다.

대서양 연안의 에트르타, 푸르빌, 옹플레르, 지중해의 앙티브, 템스강이 흐르는 런던,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매료됐고 그 풍경을 작품으로 남겼다. 죽을 때까지 43년을 산 지베르니의 정원에는 <수련> 연작을 낳은 연못이 있다.

전시장은 5개의 주제로 구성돼 모네의 작품 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물 위의 풍경-수련’을 필두로 그가 평생 즐겨 그린 ‘센강과 바다’, 86년 생애의 절반을 차지하는 ‘지베르니의 정원’ , 인물화를 모은 ‘가족의 초상’, 그리고 네덜란드의 튤립밭, 노르웨이의 겨울, 런던의 다리와 국회의사당 등 유럽 풍경을 담은 ‘유럽의 빛’이 그것이다.

◆어디서 가져오나

이번 전시는 세계에서 모네 작품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파리 마르모탕 미술관을 비롯해 세계 20여 곳의 공공미술관에서 작품을 빌려온다.

파리 블로뉴 숲 근처에 있는 마르모탕 미술관은 모네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 200여 점을 갖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약 80점이 모네 작품이다.

전세계의 애호가들이 모네 그림을 보려고 이 미술관을 찾아오지만, 올 여름 세 달 간은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이곳 모네 작품의 절반, 수련을 포함한 38점이 서울 전시에 나오기 때문이다. ‘인상주의’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모네의 걸작 <인상, 해돋이> 도 거기에 있지만, 이 작품은 해외 반출이 금지돼 있다.

이밖에 파리 오르세 미술관, 르아부르의 앙드레 말로 미술관, 투르ㆍ릴르ㆍ마콩의 시립미술관, 툴루즈의 벰베르크 재단미술관(이상 프랑스), 리에주 근대미술관(벨기에), 루가노 시립미술관(스위스), 트리튼 재단 미술관(네덜란드), 마냐니 로카 재단 미술관(이탈리아), 도쿄 후지 미술관(일본) 등에서 작품이 온다. 모네의 화상이자 오랜 후원자였던 뒤랑 뤼엘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귀한 작품들도 나온다.

■ 모네 연표

1840년 프랑스 파리 출생

1845년 프랑스 서북 해안의 르아브르로 이사

1858년 풍경화로 화가 데뷔

1874년 파리살롱전에 '인상, 해돋이' 출품. 인상주의라는 용어 탄생

1883년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정착, 첫 개인전

1886년 뉴욕서 개최된 '파리 인상파의 유화와 파스텔전'에 40여 점 출품

1895년 '수련' 연작 그리기 시작

1908년 시력과 건강 악화

1909년 뒤랑-뤼오 화랑에서 '수련' 48점 전시회

1922년 백내장으로 앞을 거의 보지 못하게 됨

1924년 조르쥬 프티 화랑에서 회고전

1926년 지베르니에서 사망

오미환 기자 mhoh@hk.co.kr

■ 모네의 예술세계/ 빛의 시대를 연 인상주의 선구자

빛을 붙잡을 수 있을까. 빛은 움직이고 변한다. 같은 사물이라도 빛이 비치는 방향과 빛의 양에 따라 매순간 다르게 보인다. 그러므로 빛을 포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거나 무시되었다.

인상주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리고 그 중심에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있다. 부질없이 사라지고 마는, 끊임없이 달아나는 빛을 붙잡음으로써 그는 순간에 영원성을 부여하고 동시에 삶의 덧없음을 받아들였다.

미술사는 모네를 빛의 시대를 연 인상주의의 선구자로 기록한다. ‘빛이 곧 색채’라는 인상주의 운동은 사물을 보는 시ㆍ지각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한, 19세기 미술의 최대 혁명이다. 그 전까지 빛은 명암 대비를 위한 것이었지 빛 그 자체로 주목 받지 못했다. 자연 풍경이나 사물은 눈이 보되 머리 속에 고정된 것이었고, 화가의 재능은 대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는가에 있었다.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이래 400년 간 지속된 그 오랜 전통을 무너뜨렸다. 인상주의는 빛을 통해 시시각각 변하는 순간의 인상을 표현함으로써, 공간의 예술로 통했던 회화에 시간성을 도입했다. ‘인상주의’라는 용어는 1874년 제1회 인상파 전시에 나온 모네의 그림 <인상, 해돋이> 에서 유래했다.

진동하는 빛의 미세한 변주를 붙잡기 위해, 풍경 모사가 아닌 풍경의 인상을 그리기 위해 모네는 여러 개의 캔버스를 야외로 갖고 나가 나란히 펼쳐놓고 무서운 속도로 빛을 따라가며 그림을 그렸다. 모네의 눈을 통해 예술가와 대중은 ‘보는’ 법을 새로 배웠다.

같은 사물이라도 그것을 지각하고 인지하는 방법에 따라 표현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미술은 전통의 무거운 굴레에서 해방 되었다. 모네와 동시대 화가인 세잔은 모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모네가 가진 것은 눈 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나 위대한 눈인가!”

시간을, 순간을 화폭에 담으려는 모네의 열망은 동일한 소재를 반복해서 그리는 연작을 발명했다. <노적가리> <루앙 대성당> <포플러> <런던 국회의사당> 연작에 이어 최후의 <수련> 연작까지, 그는 같은 대상이 동일한 각도에서 매순간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를 집요하게 추적, 그날그날의 날씨와 하루 중에도 시간대에 따라 쉬지 않고 변하는 인상을 연작으로 그려냈다. 어떤 화가도 단일 모티프를 이토록 철저하게 탐색하지는 않았다.

모네는 인상주의 탄생의 주역이자 인상주의를 넘어 20세기 추상미술의 문을 연 선구자이기도 하다. 말년의 모네는 백내장을 앓아 시력이 약해지고 색채에 대한 감각이 변하면서 점점 더 추상으로 다가갔다. 이 시기에 그린 지베르니의 연못 풍경은 형상이 거의 사라진 채 색채와 터치만 남아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에너지로 꽉 차 있다.

이 그림들이 보여준 독창성과 실험정신은 2차 대전 이후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모네의 영향은 ‘액션 페인팅’으로 유명한 잭슨 폴록을 비롯해 마크 로스코, 조안 미첼, 샘 프란시스 등 많은 화가들에게 깊숙이 뻗쳐 있다.

모네는 파리에서 태어나 대서양 연안도시 르아부르에서 유년기와 10대를 보냈다. 화가로서 그는 40세가 될 때까지 주변의 몰이해와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명성을 얻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것은 세기가 바뀌어 60대에 접어들어서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화가로 남고 싶어했다. 그 열정과 지칠 줄 모르는 탐구가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렸다. 유명한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유일한 이유는 모네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의 찬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 모네 예술 최후의 결정판 '수련' 연작

모네는 86년 긴 생애의 마지막 30년을 수련 연작에 바쳤다. 20대와 30대 내내 거처를 옮겨 여기저기 떠돌다가 43세에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는 손수 정원을 가꾸고 연못을 파 수련을 키우며 그림을 그렸다. 모네가 남긴 2,000여 점의 유화 중 지베르니에서 그린 것이 350여 점, 그 중 200여 점이 수련인 것을 보면, 모네가 얼마나 수련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수련은 그가 평생 추구한 빛과 색채의 철학을 집약한 마지막 정화다. 그는 하늘과 주변 풍경이 잠긴 거울 같은 물 위에 무리 지어 뜬 채 빛과 대기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수련에 매혹됐다. 그것은 빛과 물, 대기의 흐름을 끈질기게 탐구해온 그에게 최상의 소재가 됐다. 물에 대한 그의 묘사는 수련 연작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에게 수련은 결국 물의 풍경이다. 수련 연작을 처음 발표한 1909년 전시 제목도 <수련, 물 위의 풍경> 이었다. 그는 수련에 ‘님페아’라는 제목을 붙였다. ‘님페아’는 변종 백수련의 학명이다.

1900년 경의 수련 작품은 사방 90㎝ 정도 크기에 불과하지만 점차 크기가 커져 2m, 3m의 대작이 나온다. 처음엔 연못 주변 풍경이 함께 보이지만, 뒤로 갈수록 캔버스 윗부분 좁은 공간으로 밀려나더니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수련으로만 꽉 찬다.

하늘은 물에 비친 영상으로만 나타난다. 물과 하늘이 하나로 녹아들어 수평선이 없는 연못 가득 전후 구별 없이 원근도 사라진 채 연못과 연못에 비친 그림자만 보이는 이 그림들에서 수련은 고요함과 충만함에 젖어 있다. 모네 자신은 수련 연작을 ‘반사된 풍경화’라고 불렀다.

프랑스 파리의 튈르리 공원에 있는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대형 수련 연작을 위한 두 개의 타원형 방으로 돼 있다. 이 곳 전시장에 낮게 걸린 수련 그림 앞에서 관객들은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이 그림을 본 화가 앙드레 로트는 “화가에게 빛은 오직 색채로만 표현된다. 바로 무정형의 세계다.

그의 그림에서 조형성은 수련들의 수의(壽衣) 아래에서 배회한다”고 썼다. 또 다른 화가 앙드레 마송은 “거울 같은 물은 우리로 하여금 우주를 상기시키고도 남는다. 오랑주리는 진정한 인상주의의 시스티나 성당이다” 라고 찬사를 바쳤다.

모네가 수련 연작에 매달린 말년은 아내와 아들에 이어 인상주의 운동의 동료였던 르누아르까지 차례로 세상을 떠나고, 모네 자신은 백내장으로 고생하던 시기다.

수련 연작은 그에게 슬픔에 빠지지 않기 위한 수단이자 예술가로서 마지막 에너지를 몽땅 쏟은 작업이었다. 모네는 1908년 평론가 제프루아에게 보낸 편지에서 “물과 그 위에 반사되는 풍경은 이 늙은이의 힘을 뛰어넘어 하나의 집착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느끼는 것을 그려내고 싶다”고 열망을 토로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계속 변화하며 불굴의 작가정신을 보였다. <수련> 연작은 그 최후의 불꽃이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 채호기 시인 기고

시인 채호기(50)는 모네를 사랑하고 수련을 사랑한다. 그는 수련을 노래한 시집 <수련> (2002)으로 문예계간지 <세계의 문학> 이 주관하는 제21회 김수영 문학상을 받았다.

평론가 겸 칼럼니스트 고종석은 이 시집을 평하기를 “만년의 모네가 지베르니의 제 집 정원에서 붓으로 한 일을 펜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썼다. 국내 첫 모네 회고전을 앞두고, 시인이 모네와 수련 이야기로 옥고를 써주었다.

●나의 모네, 나의 수련

모네의 그림들이 한국에 온다니 마음 설렌다. 수련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전국 각지의 연못들을 순례하던 여름날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내가 처음 모네의 그림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대성당> 연작 시리즈에 매료되어서 였다. 캔버스에 포착된 빛의 질감이 구상 회화의 극한까지 치달아가는 그 끈질긴 표현, 모네는 어디에도 달라붙지 않는 빛을 화면에 고정시키려는 불가능한 도전을 했었다. 내게는 그러한 작업을 한 모네가 진정한 예술가의 한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어느 여름날 새벽 수련이 내 귀에 속삭이고 난 후, 나는 그 수련의 말을 해독하고 싶은 알 수 없는 충동에 이끌려 시집 한 권을 썼다. 물론 거기에는 모네에 관한 시도 두 편 들어 있다.

모네의 화집들을 보고 읽으면서 상상으로 쓴 시이지만, 나중에 파리 근교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과 정원을 둘러보면서 ‘상상이 실재를 불러 온다’는 명제를 나는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수련과의 연애를 시작하던 무렵부터 내게 모네를 대표하는 그림은 <수련> 연작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수련은 빛의 꽃이다. 빛의 혀가 공기를 애무하면, 투명하던 공기들이 어느 순간 형태를 띠게 된다. 수련은 그렇게 탄생한다. 그 수련은 또한 보석처럼, 전등처럼, 크리스털 빛을 뿜어낸다.

결국 수련은 빛의 결정체인 것이다. 빛에 혼을 빼앗기고 있던 모네에게 그 무엇보다 수련은 화가의 꿈이 실현된 실체였을 것이다. 모네의 <수련>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빛의 향기가 온 몸을 감싼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덧 수련의 꽃잎에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수련은 물의 꽃이다. 밤새 물의 반죽으로 빚어낸 나체의 꽃인 것이다. 수련은 낮에 꽃잎을 활짝 펼쳤다가 밤이 되면, 그 치마를 오므린다. 그렇게 삼일 낮밤을 지새우고 일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수련(睡蓮)은 동양에서는 잠자는 꽃이다. 물과 잠, 이 두 단어에서 수련의 신비로움이 생겨난다. ‘물’이란 단어는 소리가 매끄럽고 도르르 굴러간다.

‘잠’이란 단어는 소리가 부드러운 진흙으로 잠겨들고 저 깊은 곳으로 침잠한다. 게다가 ‘물’은 여는 느낌이고 ‘잠’은 닫는 느낌이다. ‘물’과 ‘잠’이 어울리면 왠지 에로틱한 느낌이 든다. 그러니 수련을 보고 있으면 에로틱한 신비에 포박 당하지 않을 수 없다. 모네의 <수련> 을 보고 있으면, 그가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그의 배가 낳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모네의 부른 배는 내게 수련을 잉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느 여름날 새벽, 잠자고 있는, 곧 깨어나 꽃잎을 펼칠 수련이 궁금하여 나는 두근대는 심장의 힘으로 공원으로 달려나간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나와 보조를 맞추는 모네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시 <모네의 수련 1> 은 그렇게 씌어졌다.

수련은 여름의 꽃이다. 여름에 피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내게는 여름의 비밀 문을 여는 열쇠이다. 수련은 그 하얀 얼굴을 수면에 띄우고 나신의 하체를 물 속에 감춘다. 물 속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여름의 비밀이 들어 있다. 나는 물 앞에서 망설인다. 여름의 비밀 속으로 성큼 들어가지 못하고 애태운다. 나는 수련 앞에서 늘 안타깝다.

여름은 하얗게 표백된 햇빛처럼 안타까운 계절이다. 모네는 이 여름 앞에서, 수련의 안타까움 앞에서 어떻게 했을까? 모네의 그림이 그 답을 알려줄까? 모네의 그림들이 기다려진다.

채호기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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