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노동당 집권이후 만 10년 동안 줄곧 재무장관을 맡아온 고든 브라운(56)은 여러 면에서 오랜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인 전임자 블레어 총리와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다.
블레어 총리는 TV를 잘 받는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대중을 휘어잡는 스타성 정치인인데 비해 브라운 장관은 새벽부터 밤까지 일밖에 모르는 실무 행정가 스타일로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어 ‘철의 재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잉글랜드 출신의 주류 정치인들과 달리 브라운 장관은 1951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났다. 수재로 소문난 브라운은 남들보다 2년 먼저 16세에 명문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해 68년 유럽과 미국의 대학가를 흔들던 학생운동의 와중에서 좌파 운동권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83년 초선의원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의회에 진출한 브라운은 87년 노동당 예비내각 재무부 수석차관, 89년 예비내각 통상산업부 장관, 92년 예비내각 재무장관을 맡으며 당내에서 고속 승진했다.
브라운의 총리직 승계는 블레어와 당권경쟁을 벌이던 94년 ‘그라니타 회동’으로 이미 10년 이상 계속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당시 존 스미스 노동당 당수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두 사람은 런던의 이탈리아 음식점인 ‘그라니타’에서 만나 브라운이 당권경쟁을 포기하는 대신 블레어는 2기 집권 후 당권과 총리직을 브라운에 이양하기로 구두 합의했다. 그러나 블레어가 2005년 3기 집권에 들어가자 브라운이 당시 합의를 근거로 불만을 표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라운은 인생에서 어려운 고비도 여러 차례 겪었다. 고교 때 럭비 경기를 하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 왼쪽 눈을 잃었다. 49세 때인 2000년 9세 연하 사라 머콜리에게 늦장가를 갔으나 이듬해 낳은 딸은 10일 만에 뇌출혈로 사망했고, 올 7월에 태어난 둘째 아들은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앓고 있다.
브라운 시대는 ‘거대한 수수께끼’라는 그의 또다른 별명처럼 임기 초반 불확실성이 영국 정가를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블레어보다는 대미관계에서보다 유연한 정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인플레와 유달리 정적이 많은 취약한 국내기반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그의 임기의 성패를 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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