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에 그늘이 깊어지고 있다.‘1,300만 관객’에 대한 환호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대박’의 기준이 200만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어떤 톱스타가 주연을 맡아도, 평론가들이 아무리 극찬을 해도 소용 없다. 영화산업 전체가‘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급작스러운 한국영화 침체의 원인과 부활을 위한 과제로 나눠 진단한다.
124만명 vs 13만명. 어린이날이 낀 지난 주말(5, 6일)의 <스파이더맨3> 와 <아들> 흥행대결 결과다. CJ CGV의 집계에 따르면, 3월에 21.3%까지 줄어들었던 한국영화 점유율은 지난달 <극락도 살인사건> <이장과 군수> 등의 선전에 힘입어 55.9%까지 회복됐다. 그러나 1일 <스파이더맨3> 의 개봉과 함께 전세는 다시 뒤집혔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합전산망을 보면 <스파이더맨3> 하나가 1~6일 관객의 67.8%를 싹쓸이해 갔다. <캐러비안의 해적3> <다이하드4> <슈렉3>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 이런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슈렉3> 다이하드4> 캐러비안의> 스파이더맨3> 스파이더맨3> 이장과> 극락도> 아들> 스파이더맨3>
넘쳐나는 돈, 말라붙은 상상력
전문가들은 한국영화가 ‘죽 쑤는’가장 큰 이유로 상상력 고갈을 꼽았다. 관객들에게‘보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킬 영화가 없다는 것이다. 영화평론가 김시무씨는 “<미녀는 괴로워> 이후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다”면서 “관객을 끌어당기는 가장 큰 유인은 장르적 특색이나 예술성이 아니라, 호기심을 끄는 새로운 소재”라고 지적했다.‘아버지’를 다룬 복고주의 영화가 봇물을 이루는 것과 <못 말리는 결혼> 처럼 흥행공식을 충실히 답습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기획력 부족의 증거라는 것이다.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왕의 남자> 나 <괴물> 이‘장르’의 틀을 파괴하는 획기적 소재였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괴물> 왕의> 못> 미녀는>
충무로의 아이디어가 말라붙게 만든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자본’이다. 강한섭 서울예술대 교수(영화학)는“1990년대 후반 이후 ‘영화가 돈이 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들어온 외부자금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투자자들이 기획과 시나리오 준비단계에서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강 교수는 “투자와 제작의 순환주기가 짧아지면서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양산되고, 이런 작품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으면서 확실히 흥행할 것 같은 스토리와 장르에 더 집착하는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감독들의 작가주의 경향도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창무 서울시 극장협회장은 “전년에 같은 기간에 비해 관객이 40% 정도 줄었는데, 영화의 질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관객의 요구에 맞는 영화가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우리나라 관객들은 작품성 있는 영화를 원하지만, 아직 작가주의 영화가 대중성을 얻기는 힘들다”며 “<천년학> 같은 영화가 외면을 받는 것이 그 증거”라고 밝혔다. 작품성과 대중성이 절묘하게 만날 경우‘1,000만 관객’의 대박이 터지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그들만의 영화’로 남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준익 정윤철 한재림 등 흥행작을 만들 능력이 있는 감독들이 최근 ‘작가주의’에 함몰됐다는 분석이다. 천년학>
와이들 릴리스에 목 매는 영화계
한국영화가 고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극장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형적인 시장상황에도 있다. CJ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국인의 연평균 관람일수와 스크린당 인구수 등은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며“포화상태에 이른 상영관 수입 외에 부가수익이 없어 투자위축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불법복제로 인한 부가판권시장 전멸, 배급부율(극장과 제작ㆍ투자사의 수익 배분율)문제 등 해묵은 과제가 풀리지 않는 한 단기성 투자와 와이드 릴리스 폐해는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투자위축으로 인한 본격적인 영화시장 수축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기획ㆍ투자결정에서 개봉까지 2년이 넘게 걸리는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한국영화의 침체는 앞으로가 더 심각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강 교수는 “영화의 비즈니스모델이 붕괴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투자 위축→작품 질 저하→관객 외면→투자세력 철수”라는 절망적 사이클의 전개를 예측하기도 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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