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칸영화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의 첫 시사는 처참했다. 잘 알려진 대로 객석을 가득 메운 전세계 기자들은 박수 대신 야유를 보냈고, 미국쪽에서는 관객들에게 <마리 앙투아네트> 를 볼 돈으로 케이크를 사먹으라는 평도 있었다. 아마도 한국에서라면 케이크를 사 먹으라고 하는 대신, 영화를 볼 돈으로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 를 빌려 보라고 했겠지. 베르사이유의> 마리> 마리>
물론 프랑스 국민들로서는 화가 날만도 하다. ‘서민들이 왜 굶지요? 빵이 없으면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될 터인데.’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이 유명한 대사가 영화에서는 한낱 소문이라고 커스턴 던스트의 입을 통해 가볍게 넘어간다.
소피아 코폴라는 오히려 열 네 살 나이에 이국만리에 시집 온 한 소녀의 성장담을 통해 나름의 역사적 주석을 단다. 처음엔 애완견을 사랑했고, 그 열정을 분출할 길이 없어 구두와 모자 수집에 열을 올리다, 진짜 남자다운 남자와 사랑도 해 보았지만, 그 열기마저도 오래 갈 수 없었던 처녀 아이. 마침내 성숙해져 오래 살아 온 남자를 이해하고 어머니로 변모하면서 서서히 강해져 간 평범한 여자.
실제로 소피아 코폴라가 풍자하고 희화한 것은 앙투아네트가 아니라 그녀를 에워쌌던 절대왕정시대, 프랑스 궁중의 텅 빈 화려함과 로코코풍 스타일 안에 담긴 위선과 기만성 같은 것이었다. 기나긴 식사시간은 서커스놀이 같고, 하녀들이 모든 것을 다 해주는 앙트아네트는 또 다른 마리오네트 같다. 코폴라는 이를 위해 순진한 분홍이 넘실대고, 부풀어 오른 스커트들이 꽃을 피우며, 허깨비 같은 화장-가면을 한 인간들이 빼곡히 들어찬 베르샤이유의 풍경을 공들여 재창조해냈다.
사실 시대극이지만, 영화는 어떤 면에서 그녀의 전작인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치기 힘들다. 그녀는 일본 속의 미국인을 다루었던 전작과 달리, 이번엔 프랑스 속의 오스트리아인에 방점을 찍는다. 어떤 영화를 만들든 소피아 코폴라는 외로움과 단절의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건 아마도 그녀가 대인관계에서 늘 느끼는 감정인 것 같다. 이 점과 연관되어 커스턴 던스트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여배우의 선택이 절묘한데, 그녀의 너무나도 올 아메리칸 걸 같은 얼굴은 정말로 프랑스 궁중에 시집을 온 외국여자가 느꼈을 법한 이물감을 절묘하게 아이콘화 한다. 사랑도>
그래서 개인적으로 <마리 앙투아네트> 는 한국에 시집 온 베트남 여자일 수도 있고, 일본에 시집 간 중국 여자일 수도 있는 거다. 영화를 보면서 드는 생각. 앙투아네트가 특별히 사치스런 여자라기 보다 그때 그저 베르사이유 궁에 들어가 왕비 노릇을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닐까? 그녀는 역사적 통찰력이 전혀 없는 남편을 만나 미래 통찰력이 전혀 없는 왕족으로 길들여져 간다. 그리니 만약 당신도 나도 그리고 영화를 보는 대신 케이크나 사먹으라고 야유했던 평론가마저도 그 시절 프랑스 궁중에 왕비로 들어갔다면 결과가 달라질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마리>
그 점에 있어서 <마리 앙투아네트> 는 역사를 왜곡했기는 커녕, 차마 프랑스인들이 인정하기 싫은 어떤 역사적 맹점에 정면으로 승부하고 있다. 칸은 마땅히 이 재기발랄하고 명민한 감각적인 역사물에 대해 다른 대접을 해 주어도 좋았을 것이다. 마리>
영화평론가ㆍ대구사이버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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