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엘리제궁을 떠나게 될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의 주요국 지도자 중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다.
시라크를 비롯해 프랑수아 미테랑, 헬무트 콜, 마거릿 대처 등 과거의 영-불-독 리더들은 유럽의 대지가 다시는 폐허로 변하고 피로 물들지 않도록 유럽 통합을 추진했고, 결국 유럽연합(EU)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7일 프랑스 대통령에 니콜라 사르코지가 당선되면서 EU를 이끄는 유럽의 주요국 지도자들이 모두 50대 전후(戰後)세대로 바뀌게 됐다.
사르코지 당선자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52세로 동갑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후임으로 유력한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56세다. 한국식 조어인 ‘575세대(50대, 70년대 학번, 50년대 출생)’가 새로운 유럽을 이끌어나가게 된 것이다.
젊다는 것 외에도 세 지도자들은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모두 ‘실용주의적 개혁가’들이며 외교적으로 미국에 가까운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주 35시간 근무제 등 프랑스의 대표적인 좌파적 경제정책을 대대적으로 수술, 자유 시장경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당선 직후 연설에서 ‘미국과의 우정’을 강조한 것은 그가 미국의 정책에 항상 견제구를 날렸던 이전 프랑스 대통령들과 다른 외교 정책을 표방할 것을 보여 준다.
단 “미국과 같은 위대한 나라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한 투쟁에 장애가 돼서는 안 된다”는 발언 등에서는 ‘부시의 또다른 푸들’로 전락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지도 동시에 읽힌다.
동독 출신의 기민당 당수로 2005년 독일 총리가 된 메르켈은 그동안 사회당과의 연정을 잘 이끌며 독일의 경제 개혁을 추진, 경제성장률이 높아지고 실업자가 주는 등 이미 눈에 띄는 성과를 거뒀다. 미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러시아의 이해를 배려하는 등 외교 측면에서도 실용주의적 접근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EU 순회의장국 지도자로서 EU 헌법 부활을 위해 노력 중인 메르켈 총리는 첫 해외 방문지로 독일을 선택한 사르코지 당선자와 곧 만날 예정이다.
사르코지 당선자는 ‘미니 헌법’의 형태를 주장하고 있지만 EU 헌법을 부결될 가능성이 큰 국민투표가 아니라 의회의 투표로 승인하려는 생각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은 벌써부터 주목되고 있다.
앞으로 1~2주 내 사임할 예정인 블레어 총리의 후임으로 유력한 브라운 장관은 좌파인 노동당 출신이지만 미국식 시장경제와 실용주의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고, 유로존 가입에 부정적이라는 점 등에서 ‘40대의 개혁가’였던 블레어 총리와 큰 차이가 없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헌법이나 미국과의 외교 등에서 젊은 지도자들은 활발한 논의를 통해 새로운 EU를 꾸려나갈 것이다. 또 이들의 활약으로 유럽 내에서 영-불-독 3국이 예전의 선도적 역할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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