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경찰은 서울의 한 호텔에서 나오던 조재환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의 차를 급습, 트렁크에서 현금 4억원이 든 사과 상자 2개를 찾아냈다. 경찰은 이 돈이 지방선거 공천 대가인 것으로 보고 조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했다.
2009년 상반기에 10만원권 지폐가 발행되면 이런 장면은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1만원권으로 4억원을 주려면 사과 상자 2개가 필요하지만, 10만원권으로는 007가방 하나만 있으면 된다. 10만원권으로 1억원을 줄 경우 서류봉투 하나면 충분하다.
국가청렴위원회는 8일 한국은행이 2일 밝힌 5만ㆍ10만원권 발행 방안에 대해 “고액권은 자금 추적이 불가능하고 부피가 적어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범죄수단 악용 등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렴위는 또 고액권 발행이 거래의 신용화ㆍ전자화 추세에 역행하고, 물가상승 우려가 있으며, 소득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렴위는 현재 42위에 머무르고 있는 국가청렴도지수가 20위권 내로 진입하는 2010년까지 고액권 발행을 미루거나 5만원권을 먼저 발행한 뒤 부작용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10만원권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그러나 청렴위의 이 같은 입장 표명은 이미 정부의 고액권 발행 방침이 발표된 후 나온 데다 강제성이 없어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다. 때문에 청렴위가 나중에 문제가 불거질 경우 빠져나가기 위한 책임 회피용으로 입장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고액권 발행 후 일정기간 동안 현금인출기(CD)나 자동입출금기(ATM)에서 고액권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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