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67년 4월 24일 낮 12시30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요인들은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 'IBM 1401' 가동 순간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 설치된 IBM 전자계산기가 1초 동안 6만자나 읽어내자 이들은 일제히 탄식을 내질렀다. 컴퓨터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국내에 처음 들여 온건 한국IBM. 그래서 한국IBM의 40년 역사는 곧 우리나라 정보기술(IT) 역사로 통한다.
#1960년 한국전쟁으로 붕괴된 산업 기반을 재구축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서막이 올랐다. 하지만 당시 변변한 국내 기업 하나 없는 상황이어서 외부의 손길이 절실했다.
이 때 독일의 한 기업이 손길을 내밀었다. 바로 한국지멘스다. 지멘스는 전쟁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한국의 사회기반 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지구 반대편인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진출한 1세대 외국계 기업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되살리고자 정부가 도입한 경제 부흥 프로젝트에 외국계 기업들이 참여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외국계 기업들의 한국행 러시가 시작됐다.
한국지멘스를 비롯해 한국베링거인겔하임 씨티은행 한국코카콜라 한국바스프 한국화이자제약 등이 당시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뒤를 이어 1970년대 한국IBM 필립스전자 유한킴벌리 신도리코 등이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전기전자 업체인 한국지멘스, 화학업체인 한국바스프, IT업체인 한국IBM은 한국에 진출한 지 40년이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불혹(不惑)'을 넘긴 나이다.
이들 1세대 외국계 기업은 오랜 역사 만큼이나 한국 경제와 굴곡을 같이 했다. 70년대 '중화학 공업 육성', 80ㆍ90년대 '한강의 기적', 97년 '외환위기', 2000년 'IT붐' 등 한국 경제의 큰 흐름이 바뀔 때마다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지멘스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국전쟁이 계기가 됐다. 지멘스는 1960년대 한국전 종전과 함께 사회 인프라를 구축을 통한 경제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무너진 발전설비를 세우고 화학공장, 시멘트 공장 설립 및 통신 케이블 설치 등의 기간시설을 새롭게 짓는데 앞장섰다.
70년대에는 철강 등 플랜트 사업부를 강화해 78년 현대그룹과 강전류 증축 라이센스를 체결하기도 했다. 이후 지멘스는 오스람코리아 설립하고, 벤딕스 코리아를 흡수하며 지멘스 오토모티브 시스템으로 변경했다.
한국지멘스 조셉 마일링거 사장은 "한국에 진출할 당시는 수익이 목적이 아니었다"며 "폐허가 된 기반 시설을 재건하는 게 급선무였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1954년 첫 진출한 한국바스프는 70년대 화학산업을 선도했다. 정부가 중화학 공업을 정책적으로 키우면서 바스프도 함께 성장했다.
외국계 기업들이 철수하던 외환위기 당시 바스프는 관련 3개사를 통합하는 등 오히려 공격적인 경영을 전개했다. 이후 2006년에는 엥겔하드, 바스프건설화학, 레진 생산업체인 존슨폴리머를 인수하는 등 대표적인 화학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국바스프 관계자는 "한국의 화학 산업과 함께 성장한 만큼 외국계 기업이라기보다 한국 기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애착을 보였다.
IBM은 한국에서 IT산업을 처음 소개한 기업이다. 한국 정부가 IBM 1401이라는 전자계산기를 도입함에 따라 1967년 4월 25일 옛 반도호텔에 IBM코리아가 설립됐다.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은 천공카드시스템(PCS) 대신 진공관 컴퓨터 'IBM 1401'로 인구통계 조사에 나섰다. 그 후 한국IBM은 국내 전산 관련 최초 타이틀을 잇따라 만들어 나갔다.
한국IBM은 매출 고속성장을 이루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수출 신화에도 기여했다. 81년 영업부 산하 한글개발부를 설치해 한글화 제품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토착 기업화하는 한편, 82년 한국IBM에는 수출 전담 부서인 국제 구매사무소가 국내 최초로 설립돼 국제화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십수년 이상 한국IBM은 매년 수출 실적을 경신했다. 83년 1,000만 달러, 84년 2,000만 달러, 87년 5,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해 수입보다 수출이 많은 회사로 탈바꿈한다. 수출액은 93년까지 계속 증가해 5억 수출탑도 수상했다.
이휘성 한국IBM 사장은 "우리 나라 IT 시대를 연 이후 '혁신' 파트너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며 "40주년을 넘어 50, 60, 100주년을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