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규모를 뜻하는 유동성 증가폭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 가계대출 증가에서 시작한 유동성 증가는 이후 중소기업 대출 증가, 토지보상비 증가, 단기 외채 증가로 이어지며 통화당국의 긴축정책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시중에 풀리는 돈의 급증세는 결국 부동산ㆍ주식시장 등의 자산 버블로 이어져 향후 경제운영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한국은행이 7일 발표한 ‘3월중 광의유동성(L) 동향’에 따르면 L 잔액은 1,875조8,00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2.3% 증가했다. 이 같은 증가율은 2003년 2월(12.9%) 이후 4년 1개월 만의 최고치다. 광의유동성은 지난해 9월 이후 7개월 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10일 ‘5월 콜금리 목표치’를 결정하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 3월 유동성 증가 주범은 중기대출
토지보상금이 2월 유동성 증가를 주도했다면, 3월 유동성 증가의 주범은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급증이다. 3월 은행들의 기업대출액은 8조3,000억원으로 전월(5조5,000억원)에 비해 무려 51%나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의 금융상품 총량을 뜻하는 금융기관 유동성(Lf)은 전월 보다 13조3,000억원이 늘었다. Lf는 가계대출이 급증하던 지난해 11월과 12월 매달 20조원 이상 늘어났으나 통화당국의 대출 규제로 올해 1월 잠깐 감소세를 보였다가 2월 이후 다시 증가폭이 커지고 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거시경제팀장은 “정부는 지난해 연말 가계대출 급증에 따른 유동성 증가는 집값 상승 때문이며, 집값이 잡히면 유동성도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에도 증가세가 계속되면서 중기대출 증가, 주식시장 등 자산가치의 증가 등 경제영역 곳곳에서 버블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를 조정하지 않은 채 일시적으로 자금 공급원을 틀어막는 통화 당국의 미봉책이 ‘자금시장의 풍선효과’만 불러일으킬 뿐, 점점 부풀어오르고 있는 자산 버블 현상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 금리 결정 앞둔 금통위의 고민
급증하는 통화량 억제를 위해 지급준비율 인상 등 금리 인상을 제외한 모든 조치를 취했는데도 유동성 급증세가 계속되자 한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유동성 증가세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은 금리 인상이다.
하지만 1분기에 간신히 4% 성장률을 달성한 이후 겨우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경기를 생각하면 오히려 금리를 내려 경기를 끌어올려야 할 형편이다. 또 최근 시중금리 인상으로 인해 갈수록 취약해지는 가계의 부채상환 능력도 적지않은 부담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한은 금통위가 이번 달에도 콜금리 목표치를 연 4.5%로 동결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금통위의 이 같은 망설임이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연구위원은 “이미 한계상황에 다다른 주택가격 버블에 이어 주식시장이나 중기대출 시장에서도 버블이 진행되고 있다”며 범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팀장은 “최근 국내 유동성 증가 요인에 해외 차입까지 가세하면서 자산 전체 영역에서 가격급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국내 과잉 유동성을 해외투자로 빼낼 수 있는 과감한 해외투자 자유화 조치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