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이 있다면 동남아시아 땅을 사두세요. 천연식물 자원이 풍부한 동남아는 미래의 중동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상엽(43) 교수는 국내 화학기업들에 틈만 나면 이렇게 말한다. 미생물을 조작, 유용한 물질을 생산토록 하는 대사공학 전문가인 이 교수 눈에는 원유에서 연료와 각종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석유시대 이후 천연자원(Biomass) 시대가 눈앞에 그려진다. 그 때가 오면 식물자원이 1차 원료로 중요해진다고 믿고 있다.
이 교수는 호주 퀸즈랜드주의 광활한 사탕수수밭에 주목하고 있다. KAIST는 3일 피터 비티 퀸즈랜드주 총리, 서남표 KAIST 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퀸즈랜드대와 공동연구 협약식을 가졌다. 호주는 풍부한 사탕수수를, 이 교수는 세계 최고의 연구력을 제공해 다국적 화학회사를 통해 고기능성 플라스틱과 같은 고부가가치 화학제품을 생산해 나가기로 했다.
퀸즈랜드주는 브라질과 함께 세계 최대 사탕수수 수출지다.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고, 고가의 의약품 원료나 생분해 플라스틱을 만들게 된다면 호주의 광대한 사탕수수밭은 ‘유전’과도 같은 가치를 지니는 셈이다.
도대체 사탕수수는 이처럼 화려한 변신이 가능한 걸까? 그 비밀은 미생물이 쥐고 있다. 미생물은 스스로 생존을 위해 먹이를 분해하고 그 산물을 토해내는 대사과정을 거치는데, 이 산물이 사람에게는 유용한 물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효모는, 자일로스를 먹고 연료가 되는 에탄올이나 식품첨가물로 쓰이는 자일리톨을 토해낸다.
이 교수는 “가장 흔한 먹이는 셀룰로스나 전분이지만 이러한 먹이는 먼저 포도당으로 분해해 줘야 한다”며 “그러나 사탕수수는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뤄져 있어 전처리 과정이 필요없이 직접 미생물의 먹이로 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생물을 이용한 유용자원의 생산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다. 미생물은 스스로 먹고 사는 게 목적이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용물질이 나오기는 하지만 생산율이 낮아 적절히 유전자를 집어넣거나 제거하거나 효소를 첨가하는 등 조작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사공학이다. 복잡한 미생물의 대사과정에서 필요한 물질만 효과적으로 얻도록 공정을 최적화하는 것이 연구자의 능력이다.
게놈프로젝트가 이뤄지지 않았던 과거에는 닥치는 대로 유전자 조작을 해봤다가 미생물이 번식하지 않고 죽거나, 부산물이 함께 늘어나 분리공정이 복잡해지는 등 시행착오를 많이 겪기도 했다. 가장 간단하고 연구가 많이 된 대장균만 해도 대사 단계는 2,000가지나 되기 때문에 ‘최적 공정’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실제 화학공장의 생산공정 설계보다 더 복잡하다.
이 교수 실험실은 세계 최고의 대사공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교수는 2004년 페인트, 화장품, 의약품 등의 원료로 쓰이는 숙신산을 맨하이미아 균주에서 고효율로 생산하는 공정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아직 상용화하지 않았지만 벌써 수억원의 옵션 피(Option Feeㆍ미래에 기술을 살 권리에 대한 대가)를 벌어들였다. 또 대장균을 이용해 썩는 플라스틱을 생산해내는 기술도 최고 효율로 개발해낸 상태다.
이러한 바이오매스 화학제품 생산은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고 있다. 지금까지는 석유를 원료로 쓰는 인간의 화학공장이 미생물 화학공장보다 생산비가 몇 배 싸게 먹힌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제한과 재활용에 대한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어 상황은 곧 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퀸즈랜드대학에 따르면 화학산업은 전 세계 에너지의 7%를 소비하고, 사탕수수를 이용하면 재활용이 안 되는 화학물질의 85~90%를 대체할 수 있다.
이 교수는 “1g에 몇 백억원짜리 고가의 유용 단백질을 개발하는 일이 우리의 과제”라며 “㎏당 2달러, 3달러가 드는 공정에서 생산성을 1% 향상시켜 수천억원을 벌어들이는 게 우리가 해볼만한 일”이라고 말한다. 석유자원이 아닌 천연자원의 시대, 세계 화학산업의 주도권은 대사공학에 달려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