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범여권과 한나라당 모두가 극도의 분란에 휩싸이면서 이번 대선이 전통적 양강 대결이 아닌 다자(多者)구도로 치러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과 범여권(비한나라당 세력)이 각기 단일후보를 내세워 맞대결을 벌일 것이란 당초의 예상이 점차 수그러들고 있는 것이다.
과거 대선은 주로 양강 구도이거나 ‘2(양강)+α’구도였다. 2002년 대선은‘노무현 대 이회창’의 맞대결이었다. 1992년 대선과 1997년 대선은 2+α 구도였다. 92년과 97년에는 정주영, 이인제 등 제3의 후보가 20%에 육박하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변수 역할을 했으나 큰 틀에서는 양강 대결이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친노 vs 비노 vs 한나라당
하지만 올해 대선에선 과거와 같은 맞대결 구도를 점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통합의 구심력이 현저히 약해진 범여권의 경우 친노(親盧)진영과 비노(非盧)진영이 각기 후보를 내세울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당 탈당파 등을 정면 비판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우리당의 양대 주주인 김근태ㆍ정동영 두 전직 의장이 노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고, 노 대통령의 정치 개입에 거부감이 큰 중도파와 재선그룹도 결별을 각오하며 일전을 벼르는 모습이다.
이 같이 양측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면 친노세력 후보와 비노세력 후보가 동시에 대선에 출마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한나라당의 경선 룰 파동이 원만히 마무리되면 한나라당, 친노 세력, 비노 세력이 대결하는 3자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대권의 향배는 일찌감치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범여권에서 “개혁 진영이 공멸하는 최악의 상황”(우리당 임종석 의원)으로 상정한 시나리오다. 그러나 범여권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대선 막판에 후보 단일화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양강 구도로 회귀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친노 vs 비노 vs 이명박 vs 박근혜
한나라당 역시 분열을 피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당내 경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과 박근혜 전 대표측 모두 경선 룰 싸움에서 밀리면 끝장이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주중에 강재섭 대표가 중재안을 제시하더라도 양측 모두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당 분열이 가속화할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 경우 올해 대선은 4자 대결 구도로 치러지게 된다. 4자 구도라는 점에선 1987년 대선과 외관상 비슷하지만, 이번엔 여야 구분과 기존 정당의 프리미엄이 전혀 없을 것이란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우리당의 한 기획통 의원은 “4자 구도가 되면 전형적인 인물 경쟁이 벌어지게 되고, 대선 이후에는 정치권의 전면적 재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현실적인 범여권의 바람
물론 올해 대선 역시 양강구도로 치러질 것이라는 기대도 여전하다. 후보가 난립하더라도 결국엔 범여권과 한나라당 지지층이 각각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것이란 얘기다.
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민 기획의 박성민 대표는 “이미 두세 개의 거대 정당이 모든 이슈와 이해 관계를 대변할 수 없는 사회”라며 양강 구도 가능성을 낮게 봤다. 또‘범여권 단일후보 vs 이명박 vs 박근혜’ 대결 구도도 상정해볼 수 있다. 범여권이 상정하는 최상의 구도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봐야 한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