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을 찾은 주부 김소은(34)씨의 장바구니를 들여다보자.
'샐러드용 오이와 양배추, 파프리카(각 1개) 3,000원+ 딸(5)의 간식 치즈케이크 4,000원+그이와의 아늑한 밤을 위한 도나 푸가타 안실리아 와인(이탈리아산) 1만4,500원+ 건강한 아침 주스를 선사할 믹서기 4만5,000원=6만6,500원.'
장볼 일 없는 남편이야 심드렁하게 넘기겠지만 베테랑주부라면 이렇게 묻는다."믹서기 한대 값(7만~10만원)도 안되네. 왜 저렇게 싸지."
비밀은 '미니'(Miniㆍ소형)다. 김 씨가 산 건 미니 오이, 미니 파프리카, 미니 케이크, 미니 와인, 미니 믹서기 등 모두 기존제품의 용량을 확 줄여 값까지 낮춘 미니 상품들이다. 김 씨는"세 식구에 딸도 어리고 맞벌이를 하는 터라 덩치가 큰 걸 사면 못 먹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 용량이 적은 상품을 사는 게 간편하고 알뜰하다"고 했다.
실제로 김 씨가 구입한 물건을 정상제품 기준으로 환산하면 야채 5,950원, 케이크 2만7,000원, 와인 2만4,000원, 믹서기 10만원 등 총 15만6,950원이다. 미니제품을 택해 쇼핑 부담을 3분의 1가량 줄인 셈이다.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을 중심으로 미니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미니 가전이 인기몰이를 하더니 올해는 농산물과 가공식품, 와인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관계자는 "해마다 새로운 종류의 미니 상품이 나와 이제는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1차 식품은 신선함이 생명인지라 냉장고에 보관하더라도 조금만 기일이 지나면 속절없이 버려야 하는 게 현실. 이 때문에 각 백화점과 할인점은 원래 1차 식품을 인위적으로 자른(2분의 1~4분의 1 크기) 소포장 미니상품을 주로 팔아왔다.
그러나 영농기술이 발달하면서 크기 자체가 작아진 1차 식품도 늘고 있다. 미니 아스파라거스, 미니 양송이, 미니 당근, 미니 파프리카, 미니 오이, 미니 양배추, 미니 사과, 미니바나나 등이다. 값도 상대적으로 싸고 썰거나 자를 필요 없이 먹을 수 있어 매출도 10%이상 늘고 있다.
와인과 케이크, 음료 등 가공식품 역시 미니제품 전성시대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엔 매출이 20%이상 늘어난 절반 용량(375㎖)의 미니 와인이 40여종이나 되며, 디저트문화의 성장과 더불어 13종의 미니 케이크도 나와있다.
미니 믹서기, 미니 가습기, 미니 밥솥, 미니 선풍기, 미니 전기오븐 역시 기존제품보다 30~50% 싼 값을 무기로 매출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작아진 신권 덕분에 미니 지갑도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다.
꼬마상품은 주로 싱글족과 맞벌이 부부, 소가족(2, 3인)이 선호한다. 알뜰한 소비, 간편하고 부담 없는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부 김진숙(31)씨는 "남편과 와인 한 병(750㎖)을 따면 보관이 까다로워 다 마시게 된다"면서 "분위기는 띄우지 못하고 취하게 되기 때문에 미니 와인을 고른다"고 귀띔했다.
정준경 신세계백화점 식품바이어는 "단지 크기가 줄었을 뿐 모양이나 맛, 영양분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에 젊은 주부들이 미니 식품을 많이 사간다"고 말했다.
주5일제에 따른 나들이 증가와 유치원의 실습교육도 미니의 인기에 한몫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미니 올리브유와 미니 야채는 나들이 철엔 5배 이상 매출이 늘어난다"고 했고, 신세계 관계자는 "값이 싼 미니식품은 아이들의 학습용으로도 쓰인다"고 말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