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레랑스(Toleranceㆍ관용)의 나라는 성장을 선택했다. 블루칼라 노동자와 이민자들에게도 ‘프랑스병’을 치유할 변화가 우선이었다.
프랑스인들이 니콜라 사르코지 집권 우파 대중운동연합(UMP)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데는 분배 정의의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 저성장과 고실업에 시달리는 프랑스 경제의 허약 체질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위기의식이 작용했다.
선거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와 델의 공동 조사에 따르면 전통적 좌파 지지층인 블루칼라 계층의 46%(녹색당 지지자의 32%, 극좌파 지지자의 14%)가 사르코지를 지지했다. 2005년 파리 교외에서 발생한 폭력소요의 진앙지인 이민자 밀집지역 센 생 드니에서도 43.5%의 유권자가 사르코지에게 표를 던졌다.
좌파인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후보가 내건 안정적 고용 보장과 임금인상, 복지정책 확대로는 프랑스의 고질병을 고칠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이 같은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사르코지 공약의 핵심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자”는 구호 속에 압축돼 있다. 독일과 영국이 경제개혁을 통해 3%에 육박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유럽의 강자로 자리를 굳히는 동안 프랑스는 저성장과 고실업, 짧은 근로시간과 고임금 등으로 국제 경쟁력을 상실, ‘유럽의 맹주’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 과도한 복지 비용도 프랑스의 발목을 잡았다.
사르코지는 이 같은 프랑스의 고질병에 과감히 메스를 대겠다고 호소하며 프랑스인들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세대별로 볼 때 그의 연금 삭감 공약으로 가장 많은 피해를 보게 된 중산층 이상의 중장년 세대가 그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졌다는 것은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한다는 프랑스인들의 성장을 향한 열망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방증한다.
1999년 법제화된 주 35시간 근로제로 인해 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강요된 복지’는 더 이상 프랑스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프랑스 대선의 이번 결과는 영국과 독일이 경직된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각국의 고질병을 치유했던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영국 더 타임스는 7일 “프랑스 국민들이 사르코지를 뽑은 것은 1979년 영국 국민이 마거릿 대처를 총리로 뽑은 것에 비견되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사르코지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드골주의가 아니라 영국 보수주의의 변신에서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헝가리 이민자의 아들로서 그는 프랑스 민족주의인 드골주의와의 결별을 공약으로 표방했고, 프랑스 일국주의가 아닌 신자유주의를 신념처럼 받들고 있다. 이 ‘비 프랑스적인’ 네오콘이 프랑스적인 고질병들을 어떻게 고쳐나갈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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