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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로 가는 길-릴레이 인터뷰] 박재규 경남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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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로 가는 길-릴레이 인터뷰] 박재규 경남대 총장

입력
2007.05.07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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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규 경남대 총장은 지난 주말 인터뷰에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비핵화 약속을 믿을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 핵 시설 폐쇄, 불능화, 핵 포기의 2ㆍ13 합의가 실천되려면 ‘참고 또 참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총장은 특히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오랫동안 다져온 남북화해 협력을 원점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며 대선주자들의 대북 정책이나 언행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조언했다.

_누구보다도 북한을 잘 아시는데 북한은 10년 후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습니까.

“북한은 지금 바닥 상황입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아주 어렵습니다. 지난해 10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의 고위인사들이 ‘목이 조여 죽을 지경’이라고 말하더군요. 핵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북미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은 북한식 개혁ㆍ개방으로 나갈 것입니다. 내부적으로는 선군정치, 군부 중심의 사회주의를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_북한이 적화통일을 실질적으로 포기했다고 보시는지요.

“노동당 정강이 바뀌지 않는 한 실질적인 포기라고 볼 수 없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물론 고위층, 주민들의 사고는 과거와 180도 달라졌습니다. 1998년에는 ‘통일이 되면 서울서 봅시다’는 식의 위협적인 화두로 대화가 시작됐지만 지금은 ‘남쪽이 잘 사니까 같은 민족으로서 도와주면 훗날 보답하겠다’고 합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돼야 발전과 체제 유지를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미국과 붙어서 이길 수 없다는 점을 김 위원장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_우리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내부적으로는 흡수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통일부장관 재임 때 많이 받은 질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도 그렇고 노무현 정부도 같다고 봅니다. 우리의 전략은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을 기조로 하는 평화통일정책입니다.”

_북한은 정확히 어떤 노선을 택하고 있습니까. 개혁ㆍ개방입니까, 현상유지입니까.

“현상유지로는 경제발전을 할 수 없습니다. 김 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과 그 문제를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상하이 푸둥 지구를 가보면 많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2001년) 김 위원장은 상하이를 방문, 천지개벽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대단히 부러웠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그러나 중국식 개혁개방 쪽으로 갈 수 없고 북한식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체제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 낮은 단계의 개혁개방이지요.”

_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계속 쓸 것으로 보시는지요.

“90년대 초반 구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북한은 흡수통일을 막으려고 핵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94년 제네바 합의가 이루어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98년 북한에 갔을 때 그들은 ‘미국이 경수로를 결코 완성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그것은 하얀 코끼리다. 하얀 코끼리가 탄생하는 것 보았느냐’라는 비유도 하더군요. 불신의 벽이 높았습니다. 이후 워싱턴에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갈루치 대사에게 이런 얘기를 전했더니 그는 ‘미국의 경수로 완공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했습니다. 경수로 완공시점이 2003년이었으니까 북측은 그 때까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고 뒤로 핵을 열심히 만들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2005년에 들어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확실한 체제안전 약속, 경수로 보상만 이루어지면 이 게임을 매듭짓는 것이 시간을 덜 낭비하는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9ㆍ19 합의입니다.”

_9ㆍ19 합의의 진정성을 인정하시는군요.

“인정합니다. 우리가 전력 200만KW를 제공하겠다고 한 뒤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으로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다만 9ㆍ19 합의가 나오고 며칠 후에 미국이 BDA 문제로 거는 바람에 더 진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게 북측의 입장입니다.”

_한국의 미래를 위해 한반도 구조를 어떻게 구축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평화통일이 첫 조건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첫 단계인 화해협력 단계에서 신뢰를 쌓고 긴장완화, 평화적 왕래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습니다. 확실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참고 또 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_대북 포용정책을 놓고 여전히 논란이 있습니다. 논란의 요체는 지원을 하면서도 지렛대 역할을 못하지 않느냐, 경우에 따라선 상호주의를 택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국가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상호주의를 택합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선 상호주의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4, 5년만 지나면 이른바 퍼주기가 북한의 대남 의존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그러면 대북 설득 카드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번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지하 핵실험처럼 꼭 필요할 때는 인도적 지원도 중단하는 상호주의를 택합니다. 앞으로도 한참 동안은 이번에 도와주고 다음에 받는, 또 많이 지원하고 적게 받는 그런 탄력적인 상호주의로 가는 것이 신뢰구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_미국이나 일본은 포용정책의 큰 방향이 옳더라도 예민한 상황에서는 제재나 압박의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효과를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불만을 제기합니다.

“미 국무부나 백악관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를 합니다. 북한에 영향을 미칠 나라는 한국과 중국인데 국제사회가 압박을 가할 때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만은 4, 5년 동안 계속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로서는 남북간 화해협력이 잘못되면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면 남북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힘을 실어주자는 입장입니다. 2ㆍ13 합의 당시 북한과 미국은 BDA 동결자금을 30일 이내 해결키로 약속했고, 북핵 시설 폐쇄조치는 60일 이내 이루어지도록 명시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60일 이내에 송금조치가 완료될 것으로 보고 경추위를 열어 쌀과 비료지원 논의를 합의했는데 미국은 ‘왜 조금 못 기다리고 퇴로를 열어주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통일부는 ‘누가 송금이 60일 넘게 걸릴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느냐’고 반문하더군요. 대신 비료는 보내지만 쌀 40만 톤은 BDA 동결자금이 송금되고 초기조치가 이루어진 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유사한 일이 생기면 경중을 판단, 반보 뒤따라가는 것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_금년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어떤 긍정적 측면이 있는지요. 이해찬 전 총리는 방북 후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언급했는데요.

“노무현 정부 임기 내에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정례화의 의미가 있습니다. 두 정상이 만나 여러 문제들을 정리한다면 화해협력 단계를 빨리 매듭짓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전 총리가 4자 정상회담을 언급했는데 김 위원장은 여건이 성숙되면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을 바라지, 4자회담을 바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자회담이 열린다면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나올 것이어서 별 성과가 없을 것입니다.”

_북한 핵 문제로 가보겠습니다. 신뢰 파기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보십니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비슷합니다. 제네바 합의문을 보면 100만 KW 경수로 2기를 제공하는 시점에 북한은 모든 핵시설을 폐기하도록 돼있습니다. 합의 당시 미국은 핵이 있느냐, 없느냐를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관계자는 ‘보통 미국에 10개를 요구하면 3개를 주면 많이 주는데 200만 KW 경수로를 요구했더니 그대로 받아들여 얼떨결에 합의했지만 나중에 보니 하얀 코끼리였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관계자는 ‘당시는 동서독 통일 직후여서 완공 시점인 2003년 경수로가 완공되기 이전에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불신의 게임을 한 것입니다. 그에 비한다면 2ㆍ13 합의는 이행 의지만 있다면 괜찮은 합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_북한이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걸 수도 있고 미국도 북한의 행위를 걸어서 2ㆍ13 합의가 끝가지 가지 못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지연 전술이나 벼랑끝 전술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BDA 자금의 송금이 이루어지면 폐쇄, 불능화는 별 문제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봅니다. 다만 3단계 핵 포기는 리스트를 제출해야 하니까 인내와 양보가 필요할 것입니다. 핵무기가 있으면 어디 있느냐, 몇 개 있느냐 등등을 확인하려면 북측이 쉽게 얘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끝나기 전에 북미 정상화 합의 같은 기대는 너무 성급합니다. 지금부터 인내가 필요합니다.”

_대선의 해인데 대선 주자들에게 핵 문제나 남북관계와 관련해 당부를 하신다면.

“대북정책 기조에 대해 동전 뒤집듯 하지 말고 깊이 생각해 언급해야 합니다. 그 동안 어렵게 쌓아온 남북관계를 뒤집을 수 있는 얘기는 삼가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평화통일을 위한 화해협력 정책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봅니다. 흡수통일을 생각한다면 부작용이 매우 클 것입니다.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싹 바꾸겠다던 부시행정부도 변했고 김 위원장도 아버지 유훈을 얘기했습니다. 그에 맞춰 우리도 변해야 합니다. 그런 점을 후보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박재규 총장은

'프리랜서 통일부 장관'으로 불린다. DJ정부 시절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후 2001년 통일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어언 6년이 지났지만 그는 지금도 남북관계 진전과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비롯 임동원, 정세현, 정동영 전 장관들과 매월 둘째주 월요일 모여 현안들을 논의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 게이오대, 대만 기술과학대 초청 강연, 각종 내외신 인터뷰를 통해 한반도 평화ㆍ번영론을 역설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자신의 의중을 가장 읽는 사람으로 박 총장을 꼽는다고 한다.

학문 영역에서도 일가(一家)를 이루고 있다. 최초로 북한학을 만들었고 1972년 설립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를 모태로 2005년 북한대학원대학도 설립했다.

1944년 경남 마산생

미 페어레이디킨슨대 정치학과, 미 뉴욕대 정치학 석사, 경희대 정치학 박사

1973년 경남대 교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1986년 경남대 총장

1999년 통일부 장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추진위원장, 남북장관급회담 수석대표

2001년 한국대학총장협회 이사장

현 경남대 총장, 동북아대학 총장협회 이사장(2003~), 북한대학원대학 총장(2005~),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2005~)

저서 <북한외교론> <북한군사정책론> <북한정치론> <북한의 신외교와 생존전략> <북한이해의 길라잡이> <새로운 북한 읽기를 위하여>

인터뷰=이영성 편집위원 leeys@hk.co.kr사진=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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