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의 열등생 아시아가 제 목소리 내기에 나섰다. 1997년 불어 닥친 외환위기 극복 및 경제성장, 그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외환보유액 등이 동력이다.
5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한ㆍ중ㆍ일 재무장관회의에서 13개 회원국들은 사실상 아시아통화기금(AMF) 설립에 합의했다. 회원국들의 외환보유액을 출자해 공동펀드를 만들고 역내 국가에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펀드의 초기 규모는 80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히 돈을 빌려주는 것 뿐 아니라 자금 수혜국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 방지를 위해 감시 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시아판 국제통화기금(IMF)인 셈이다.
AMF 설립의 첫 수순은 2000년 채택된 치앙마이 구상(CMI)을 법적 구속력을 갖춘 다자간 협약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CMI는 당사국 두 나라간의 쌍무적 지원체제여서 자금지원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효과도 분산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하반기부터 13개국은 2단계 작업으로 각국 분담금 규모, 의사결정 절차 등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아시아 채권시장을 유로본드 마켓 수준의 국제적인 채권시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한다는 내용도 공동선언문에 담았다.
AMF 설립이 본격화한 것은 아시아 국가에 넘치는 외환보유액에 힘입은 바 크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아시아 33개국의 외환보유액은 98년 이전 5,000억 달러에도 못 미쳤지만 2002년 1조 달러 수준으로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2조2,776억 달러로 급증했다.
동아시아 10개국의 외환보유액이 전세계 중앙은행 보유 외환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외환위기로 놀란 가슴에 돈을 마구 끌어당기다 보니 ADB가 오히려 아시아 국가들의 외환보유액이 지금의 절반 정도면 충분하다고 지적할 정도가 됐다.
넘치는 외환보유액을 아시아 국가들의 금융협력을 위해 쓰자는 공감대는 자연스럽게 IMF에 대한 견제의식과 결합했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 및 그에 비해 초라한 세계 금융시장에서의 영향력도 아시아를 일어서게 했다.
IMF에 대한 아시아 국가들의 견제는 지난해 결실을 보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열린 IMFㆍ세계은행 연차 총회에서 한국 중국 등 4개국의 의결권이 확대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결권은 0.764%에서 1.345%로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아시아 금융협력의 종착점은 경제통합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공동통화(ECU)가 유럽 경제통합의 토대가 된 것처럼 아시아공동통화(ACU)가 필요하다. 현재 '아세안+한ㆍ중ㆍ일'의 중장기 이슈를 연구하는 동아시아 연구그룹은 2006~2007년 주제를 ACU로 잡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6일 교토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아시아 공동통화는 장기과제다. 민간부분에서 연구가 진행 중이며 정부가 개입하면 방향이 어긋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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