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회사들이 750만 명에 달하는 복수카드 소지자의 신용정보를 10년 넘게 통째로 공유하고 있는데 대해 위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외환 위기와 카드 대란을 거치면서 여러 장의 카드를 보유한 이들의 ‘돌려 막기’를 막기 위한 조치였지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신규 회원 유치 등 마케팅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6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계, 전업계 카드사들은 외환 위기 직후인 1997년부터 여신금융협회가 구축하고 있는 ‘복수카드 조회시스템’을 통해 4장 이상의 신용카드를 보유한 복수카드 소지자들의 신용 정보를 통째로 공유해오고 있다.
이들 복수카드 소지자는 지난해말 현재 752만 명으로, 카드사들은 이들을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총 이용금액, 신용판매 이용금액, 현금서비스 이용금액, 연체금액 등의 신용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금융감독원의 지침에 따라 복수카드 소지자의 신용카드 총 이용한도까지 공유 정보 범위에 포함됐다.
문제는 자사 고객 뿐 아니라 타사 고객의 정보까지 마음대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고객과 전혀 거래가 없는 카드사의 경우에도 여신금융협회를 통해 이용 실적이 얼마인지, 한도 총액은 얼마인지 등을 낱낱이 파악할 수 있다.
신용카드를 4장 이상 보유한 고객이라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신의 신용 정보를 고스란히 노출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는 곧 카드사들의 신용정보 오ㆍ남용과 직결된다.
업계 관계자는 “타사 고객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게 되면 이용 실적이 많거나 이용한도가 많은 우량 고객을 자사 고객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마케팅에 활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며 “적잖은 카드사들이 타사 고객 정보를 마케팅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행 신용정보법(신용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상거래 관계의 설정 및 유지 여부의 판단 목적으로만 신용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명시해 마케팅 목적으로 신용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도 복수카드 정보 공유가 위법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방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개인신용정보 보호 차원에서 해당 금융회사 기존 고객이나 신규 거래 신청 고객에 대해서만 신용 정보를 조회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하지만 시스템 문제로 전체 고객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도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복수카드 정보 공유에 대해) 전반적인 검사를 통해 개인신용정보가 오ㆍ남용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회사가 개인신용정보를 조회할 때 건별로 이용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으로 신용정보법 개정이 추진되는 등 정부의 정보보호 강화 방침에도 어긋난다”며 “위험 관리는 자사 고객에게만 하면 되지, 거래가 없는 타사 고객에 대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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