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정년이 없다지만, 말년에 새로운 실험을 시작하며 미답의 지경을 걷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올해 여든 셋의 원로서예가 동강 조수호가 존경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예술의전당 한국서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수호 개인전은 이 ‘팔십 청년’의 식지 않는 정열을 보여준다. 전시에 나온 서예, 문인화, 도자, 실험작 등 200여 점 가운데 특히 눈여겨 볼 것은 5년 전부터 시작한 ‘묵조(墨調)’ 시리즈다. ‘먹의 조화’로 풀이할 수 있는 묵조는 문자를 점과 획으로 풀어 헤쳐 필묵의 조형 그 자체를 추구하는 작업으로, 본격적인 서예 인생 60년의 결집이자 도전이다. 그는 “음악이 음의 고저장단이나 리듬의 조화로 나타나듯 먹과 물, 작가의 정신이 조화를 이룬 것이 묵조”라며 “먹빛 하나만 갖고도 1,000가지 색깔을 만들어내는 필묵의 세계, 한 마디로 먹의 교향악”이라고 설명한다.
묵조의 실험성과 달리 전통적인 작업에서 그의 서예는 우직하리만큼 정통에 충실하다. 특히 글씨로는 행서가 독창적이기로 유명한데, 이를 두고 ‘비운유수(飛雲流水), 즉 구름이 날고 물이 흐르는 듯한 동강체’라고 한다.
서예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접(接)의 예술”이라고 명쾌한 정의를 내린다. “사랑하는 남녀가 입맞춤을 하듯 붓과 종이의 마찰지점에서 나는 느낌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고 말한다.
그는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다가 1949년 국전에서 서예작품 <어부사> 로 특선을 하면서 서예로 길을 돌렸다. 지난해 11월 일중 김충현, 올해 2월 여초 김응현이 타계함에 따라 한국 서단에 외롭게 남은 큰 어른이 되었다. 전시는 27일까지. (02)580-1284 어부사>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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