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원로시인 김시종(金時鐘)과 강상중(姜尙中) 도쿄대 교수 등이 중심이 된 동포그룹이 새로운 개념의 한인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모처럼 전해진 신선한 소식은 침체한 동포사회에 희망과 활기를 주고 있다.
● 기대ㆍ관심 높은 코리아국제학원
동포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사람들이 주축이 된 '재일동포 학교설립준비위원회'는 내년 4월 개교를 목표로 6년제 중고 일관학교인 코리아국제학원(KIS)의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오사카에 세워질 이 학교의 건학 정신은 '경계를 초월하는 초경인'(超境人)'.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고달픈 경계인의 한계를 발전적으로 극복해 재일동포를 동아시아를 넘어서는 국제인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
'다문화 공생(共生)' '인권과 평화''자유와 창조' 라는 교육이념을 내세운 이 학교는 체험형 해외연수와 일선 전문가에 의한 특별수업, 한국어 영어 일본어의 다언어교육 등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파격적인 교육방안도 제시했다.
동포들의 기대와 관심은 상상 이상이다. 와해 직전에 있는 동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로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
동포들의 가장 큰 걱정 중 하나는 역시 교육문제다. 민족교육의 명맥을 유지해왔던 조총련계 조선학교가 심각한 어려움에 빠져 있다. 한국계 학교는 도쿄학교 등 4개교에 불과해 정체성을 갖게 하는 정상적인 동포교육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1980년대 이후 일본에 뿌리내리는 소위 한국인 '뉴커머'(New Comer)의 수가 크게 늘어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KIS의 설립은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려는 실질적인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주목 받고 있다.
내면화한 동포들의 자의식이 드디어 분출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있다.
100년의 역사를 드리우게 된 재일동포 사회는 세월만큼이나 크게 변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바뀌면서 나타난 지각변동이다. '민단 대 조총련'이라는 이념적 구도도 이미 흘러간 유행가가 됐다. 구심점이 사라졌고, 동포들은 파편화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동포사회의 내면은 다시 폭발 직전의 마그마처럼 끓기 시작했다. 아버지ㆍ할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뚜렷한 주관을 갖고 있는 이 신세대 동포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현실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며 노력해 왔다.
● 동포사회 정체성 찾기 지원을
많은 동포들은 KIS의 설립움직임을 이 같은 노력의 가시적인 첫 발자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동포사회의 본격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구심점이 돼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역사의 희생자로서 특수한 삶을 살아온 재일동포의 정체성 찾기 노력을 우리가 모른 척 해서는 안될 것이다. 더 이상 주변인으로 머무르지 않고 당당한 '초경인'이 되겠다는 동포들의 꿈이 멋지게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김철훈 도쿄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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