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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태평양의 방파제' 식민지 이주 장밋빛 꿈은 사라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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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태평양의 방파제' 식민지 이주 장밋빛 꿈은 사라지고

입력
2007.05.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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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의 방파제 삶, 사랑, 욕망, 고독, 운명의 표정 보여줘…

“식민지 군대에 지원하십시오. 젊은이들이여, 식민지로 오십시오. 행운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899년, 프랑스는 식민지로 살러 갈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는 그 포스터를 보고 남편과 함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즉 베트남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꿈의 땅은 기만의 땅이었다.

식민지를 관리하려는 정부의 음모로, 애당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불하지는 한 가족을 망가뜨린다. 어머니가 미필적 고의로 선택한 가혹한 운명에 사로잡힌 자식들, 쉬잔과 조제프의 삶은 나날이 무료하고 고통스러울 뿐이다.

어머니가 얻은 것은 남편의 때이른 죽음, 태평양 물에 잠겨 쓸모 없어진 소금의 땅과 방갈로였다. 와중에 젊음마저 소진됐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사진)의 장편 소설 <태평양의 방파제> 는 가진 자들의 계략, 방파제 앞에서 무너져 가는 어머니의 꿈을 잔혹하게 대비시킨다. 생명은 잔인하다. 무너지는 방파제 너머로 두 자식은 성장통을 겪는다.

해군 장교들과 창녀는 식민지에 독특한 풍물을 만들어 낸다. 결국 아이들은 쉬 성에 눈 뜨고 언행과 심성이 거칠어 진다. 그것이 식민지 사회 현실과 맞물려 혼돈스러운 사춘기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제 방파제가 올해 세워질 수 있는 희망이 없다 하더라도, 딸년을 당장 창녀촌에 주어버리고, 아들놈이 떠나도록 몰아부치고, 관리들은 암살시키는 것보다는 낫습니다.”(308쪽) 토지국 담당관 앞으로 쓴 어머니의 편지는 그들을 옭아매는 질곡의 정체를 폭로한다.

장교들을 위한 창녀와 호텔의 풍경 너머 출구 없는 삶은 이어진다. 거기서 작동하는 욕망의 풍경은 처절하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쉬잔의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린 피를 닦아 주었다.”(358쪽) 아이들의 성장통, 그 속에서도 빛나는 그들의 건강성 등은 소설 속의 또 다른 대립항으로 작용한다.

국내 독자에게 <연인> 으로 낯을 튼 뒤라스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태어나,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역시 영화는 물론 희곡으로도 만들어진 이 소설을 두고 저자는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은 바 있다. 그녀의 문학이 닻을 올린 이 작품은 향후 두고두고 쓰게 되는 삶, 사랑, 욕망, 고독, 운명 등의 표정을 싸잡아 보여 주고 있다.

시인이자 상지대 교수로 <람세스> <시간의 지배자> 등을 번역한 김정란 씨의 유려한 문장이 식민지 땅에 삶을 저당 잡힌 가족을 감싼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ㆍ김정란 옮김 / 새움ㆍ383쪽ㆍ1만5,000원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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