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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건강한 혁명의 땅 南美, 그것은 한낱 환상이었나

입력
2007.05.04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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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손호철 글ㆍ사진 / 이매진 발행ㆍ271쪽ㆍ1만3,000원

혁명과 혼돈의 땅 라틴아메리카. 진보 정치학자 손호철 교수는 2001년부터 작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이 지역 8개국을 여행했다.

종속이론, 관료적 권위주의론 등 변혁적 사상을 움트게 했던, 그 척박한 현실을 실제 목격하고자 말이다. “거금을 들여 산 전문가용 카메라”도 가져갔다. 외양은 여느 중남미 여행기와 다를 바 없어 보여도 필자의 눈은 풍경 대신 구체적 현실을 날카롭게 응시한다.

쿠바에서 손 교수가 발견한 것은 “게바라는 죽어서도 쿠바를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의 주역이었던 체 게바라는 이제 티셔츠, 베레모, 포스터를 망라한 관광 상품의 대표 모델로 맹활약하고 있다. 브라질로 간 필자는 26만 명의 빈민이 거주하는 남미 최대 판자촌 파벨라다화시냐를 찾는다.

마약조직 두목에게 통행료를 주고 이 치안 부재 마을 탐방을 감행하며 필자는 브라질의 심각한 양극화의 연유를 따져본다. 아르헨티나에선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실종된 정치범들의 어머니 모임인 ‘5월 어머니회’를 만났다.

매주 목요일 오후 3시에 열리는 이들의 시위에 동참하며 필자는 점차 무력해지는 세계 인권운동의 미래를 염려한다.

혁명과 진보이론의 산실이란 이유로 필자가 라틴아메리카에 마냥 우호적일 것이라 보면 오산이다.

필자는 아르헨티나를 비롯,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종하며 건강성을 잃어가는 국가들을 강하게 비판한다.

생산력 수준보다 국제 자본의 이해에 맞춰 자국 화폐의 달러 환율을 무리하게 지탱하다가 외환위기를 자초한 아르헨티나 메넴 정부가 대표적 사례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지도층을 백인 일색으로 충원하는 쿠바의 구태도 필자의 예봉을 피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다. 2004년 12월 베네수엘라의 한 회의장에 앉아 있던 필자에게 불쑥 인사를 건넨 사람.

그 유명한 차베스 대통령이었다!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태도에서 느낀 호감은 그러나, 차베스 혼자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하는 8시간 동안 무색해졌다. 다른 청중과 함께 주린 배를 쥐고 밤 11시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는 게 필자의 후일담이다.

라틴아메리카에 ‘중국 바람’이 거세다는 것도 손 교수의 전언이다. 일례로 브라질 아마존의 철광석 광산은 중국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맞추느라 24시간 가동 중이란다.

‘박정희 신드롬’을 연상시키는, 페루인들의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등 필자가 전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특유의 골계미를 뽐내는 글솜씨와 더불어 한때 화가 지망생이었다는 필자의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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