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옆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의 대문이 열린 시간은 2일 오후 8시. 원장 수녀의 안내를 받아 수녀원 안으로 들어섰다. 혹여 경건한 침묵을 깰까 구둣발 소리에도 신경을 썼지만 정작 오인숙 카타리나(67) 수녀는 보이지 않았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오 수녀와 전화 통화가 이루어졌다. 그는 "주말에 있을 주한미군을 위한 감사성찬례 집전을 준비하느라 예배당에 있으니 기다려 달라"고 했다.
오인숙 수녀는 4월 29일 서울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신학을 전공한 여성이 사제 서품을 받은 적은 있으나, 수녀가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다.
"사제라는 직위에 연연하지 않아요. '여성 사제'라는 수식도 마찬가지죠. 기도, 공부, 노동을 기본으로 한 수도자(수녀) 생활에서 역할이 확장된 것일 뿐,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합니다."
성공회는 1992년 영국 성공회 전국의회의 인준을 받은 뒤 여성 사제를 두고 있다. 이제 수녀이자 사제가 된 그는 10여 년 전부터 사제 서품을 권유 받았으나 후배에게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며 사양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 중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늦고 빠름의 구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소명의식에 따라 자신이 먼저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사제 서품 소식을 듣고 미국에 있는 동생이 보낸 축하 카드에는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언니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영광이라고 생각해'라고 적혀있다. 오인숙 수녀 역시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사제 서품을 받고 4월 30일 첫 감사성찬례를 인도한 그는 그 과정에서 긴장은 했지만 은혜로운 체험을 했다고 말했다. 감사성찬례 집전은 사제가 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오인숙 수녀는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근엄, 권위와는 거리가 멀다. 낭랑한 목소리에 만면에 미소가 가득하다. 나이는 칠순을 바라보지만 꼭 소녀 같다.
"사제가 되고 나니까 십대 시절 아무도 없는 성당에서 신부님을 흉내 냈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당시엔 '여자니까 신부가 될 수 없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웃음)
그는 한국전쟁 때 부모를 잃고 동생과 함께 성공회 보육원에서 자랐다. 고아를 친자식처럼 돌보는 그 곳의 보모들을 보면서 그는 커서 사회사업을 하고 싶었고, 64년 수녀원에 들어온 뒤 그 일을 묵묵히 수행했다.
"부모 없는 것을 원망하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저만 그런 고통을 겪는 게 아니었어요. 짧든 길든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보육원에 맡겨질 수 있던 것도 행복으로 느껴지고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오더군요."
빈부격차, 사회 양극화 등으로 사회적 소외 계층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그는 긍정적인 사고를 주문했다. "남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과 차이점만 바라보지 마세요.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고 그것에 충실히 임한다면 희망이 보일 겁니다."
글ㆍ사진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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