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범여권'이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라며 '비한나라당 세력'이라는 좀더 정확한 표현을 써 달라고 정치권과 언론에 주문했다.
얼마 전까지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라면 몰라도 대통령과 함께 국정 책임을 질 용의도, 연대ㆍ협력 의사도 없는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 심지어 한나라당을 탈당한 인사까지 '범여권'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단순히 언어감각만으로 따지자면 일리가 있다. 그러나 '범여권'이라는 정치적 용어는 현재의 정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사실상의 여당이다.
창당 주역 상당수가 이미 당을 나갔거나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마당이고, 그 원인인 당내 노선 갈등이 무엇보다 연말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방법론 차이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열린우리당 울타리는 특별한 경계선이 될 수 없다.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이 열린우리당에서 싹튼 통합신당 구상의 한 축이 돼 있고, 4ㆍ25 재ㆍ보궐선거 당시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 후보가 강세인 지역에서는 열린우리당이 아예 후보 공천을 포기, 간접적 연대의사를 보이기도 했다. 연말 대선 구도가 굳어질 때까지는 '범여권'의 통합이나 후보 단일화를 겨냥한 논의도 계속될 것이다.
이처럼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친노' 세력을 핵심으로 한 중력장에 들어 있는 정치세력이 '범여권' 아니고 무엇일까. 어떤 경우든 독자적 정치세력으로 남아, 독자 후보를 낼 가능성이 큰 민주노동당의 존재도 '범여권'을 '비한나라당 세력'으로 바꿀 수 없게 한다.
우리는 오히려 이번 주장의 다른 배경을 헤아린다. '범여권' 밖에서 한나라당이 누릴 반사적 이익을 차단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대통령의 강도 높은 정치 발언이 잇따르고, 핵심 세력이 탈당파에 대한 비난을 강화한 것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정치적 명분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탈당파 주역들을 강하게 밀어낼수록 부담을 덜어줄 수 있고, '범여권'을 여러 갈래로 쪼갤수록 최종적 화학결합의 효과도 클 것이다. '범여권'의 꿈틀거림이 시작됐다.
<저작권자>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